제6화
김신재가 돌아섰을 때 민희동은 이미 바닥에 있던 각목을 줍고 있었다.
“제가 때리겠습니다.”
말득이 뿐만 아니라 다른 환관과 궁녀들도 놀라 멍해졌다. 동궁에 오래 있었던 민희동도 이렇게 빠르게 꼬리를 내리는 걸 본 말득은 더 겁에 질려 김신재 앞으로 기어가서 빌었다.
“김 내관, 살려주십시오. 민희동이 때리라고 했습니다. 복수하시려면 민희동을 때리십시오.”
“네 양아버지 아니었느냐? 빚은 자식이 갚아야지.”
김신재는 웃으며 말했다.
“민희동은 제 양아버지가 아니라 제 손주입니다. 김 내관이야말로 제 양아버지입니다.”
말득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양아버지라고 불렀다.
말득의 체구로는 곤장 20대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김신재도 단지 민희동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자신의 위엄을 세우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지 부임하자마자 원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진심으로 참회하는 것 같으니 장형 20대는 장부에 먼저 기록하고 나중에 네가 하는 걸 봐서 실시할지 안 할지 다시 결정하겠다.”
“감사합니다, 양아버지. 제가 바로 방을 정리해서 만희동 저놈을 독방에서 쫓아내겠습니다.”
“그래, 가 보거라. 다른 사람들도 얼른 각자 위치로 돌아가서 일하거라.”
김신재의 명령에 다들 일제히 대답했다.
“네, 김 내관!”
백 명 정도 되는 환관과 궁녀들은 모두 10인실에서 지내고 있었으며 내관만이 독방을 사용했다.
곧 방이 비워졌고 말득은 방 안을 작은 먼지 한 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했다.
“양아버지, 얼른 쉬십시오. 저는 부엌에 일손 도우러 가 보겠습니다.”
“너는 가서 목공의 모든 도구들을 다 빌려오고 또 우림군에게서 50근짜리 활 하나를 빌려오거라.”
김신재의 지시에 말득은 빠르게 대답했다.
“네, 양아버지! 바로 갔다 오겠습니다!”
누가 강하면 누구를 양아버지로 삼는 것, 이게 바로 말득이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김신재는 느닷없이 양아들이 생겼지만 지금 이 상황을 즐겼다.
강청연은 김신재가 막 부임했으니 민희동의 심복들이 분명 김신재의 말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이미 점심을 굶을 준비를 했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점심 식사는 제때 준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평소보다 더 풍성했다.
강청연은 점심 식사를 보고 칭찬했다.
“이제 두 시진밖에 안 됐는데 백 명 되는 하인을 제압했네. 과연 수단이 좀 있는 자로구나.”
“제압하긴 뭘 했다는 것이옵니까? 오전 내내 활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사옵니다.”
청이의 대답에 강청연은 의아했다.
“김신재가 활을 만들 줄도 아느냐?”
“네. 복합궁을 개조하면 세자 저하께서 동렵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했사옵니다.”
“복합궁이 무엇이냐?”
청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인도 잘 모릅니다만 꽤 복잡한 것 같사옵니다. 도면까지 그렸는데 50근짜리 활로 100근짜리 활의 위력에 맞먹는 화살을 쏠 수 있으며 들소도 사냥할 수 있다고 했는데 허풍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사옵니다.”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100근짜리 활은 타고난 신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쏠 수 있느니라.”
강청연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김신재에게 방금 내관직을 맡았으니 동궁 내무를 잘 파악하고 동렵 문과 시험에 대해 잘 고민해 보라고 하거라. 늘 쉽게 성공하려는 요행 심리와 자신이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은 버려야 할 것이다.”
“네, 지금 바로 가서 전하겠사옵니다.”
...
동궁 연무장에서 이무열은 100번째 연습하고 있지만 여전히 50근짜리 활을 끝까지 당기지 못했다.
전성기 시절의 그는 80근짜리 활도 당길 수 있었다.
이미 사흘째로 내일이면 동렵 날인지라 이무열은 자신에게 화가 나서 활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훈련에 동행한 호위군 도위 허삼중은 크게 놀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하, 혹여 오래된 상처가 재발한 것이옵니까? 조금 쉬시는 게 좋을 듯하옵니다. 너무 과로하시면 동렵 때 오히려 활약에 영향을 미칠까 봐 우려되옵니다.”
진심으로 걱정되어 한 말이 오히려 이무열을 더 화나게 했다.
“누가 오래된 상처가 있단 말이오? 혹시 허 도위도 내가 못 해낼 것 같소?”
할 수 없다는 말은 이무열에게 영원한 고통으로 남아있다. 이무열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허삼중은 곧바로 털썩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소신이 생각이 짧았사옵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허 도위가 과녁이 되어보는 건 어떻소? 내가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는 과녁이 되어보면 알 것이오.”
냉혈하고 무정한 이무열의 성격에 분명 그를 고슴도치가 될 때까지 쏠 것이라고 생각하며 허삼중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하,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허 도위, 지금 내 명을 어기는 것이오?”
허삼중은 놀라서 다리가 풀렸으며 급히 부하들에게 세자빈을 찾아오라고 눈짓했다.
이무령은 동렵할 때 점용할 산 일대를 비우려고 우림군을 데리고 서쪽 교외 사냥터로 갔기에 지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세자빈밖에 없었다.
강청연은 소식을 듣고 가장 빠른 속도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허삼중은 이무령의 심복으로 300명의 우림군을 이끌고 밤낮으로 동궁을 지키며 충성심이 매우 강하다.
만약 과녁이 되어 화살에 맞아 죽는다면 병사들도 마음이 떠나 누구도 세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강청연이 도착했을 때 허삼중은 이미 왼팔에 화살을 맞았지만 감히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무열은 자신의 무능함에 분노하여 다시 허삼중의 오른팔을 겨누었다.
“저하, 노여움을 푸십시오!”
강청연은 크게 외쳤다.
“부인, 여기는 남자들의 장소이니 참견하지 마시오.”
“저하,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닥치시오!”
이무열은 호통을 치며 화살을 날렸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맞지 않았다.
강청연의 말도 듣지 않는 걸 보아 이무열은 이미 이성을 잃은 게 틀림없으며 오늘 분명 큰 일을 저지를 것 같았다.
부하를 과녁으로 삼는 건 폭군이나 할 일이다.
덕헌국은 무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항상 무장을 존중하는데 만약 이 일이 덕종의 귀에 들어간다면 세자 자리도 위태로울 것이다.
강청연은 자신이 시집을 잘못 왔다는 생각에 너무 후회되었다. 독수공방하면서 부부의 실속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매일 두려움 속에서 떨어야 했다.
변덕스러운 성격의 이무열은 진정한 왕이 될 인물이 아니었으며 한 번의 잘못으로 그녀의 가문을 전멸시킬 수도 있다.
이무열이 다시 활시위를 당겨 허삼중을 겨누고 있을 때 누군가 연무장 밖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저하, 활을 바꿔보시옵소서.”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김신재가 활을 하나 쥐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청이는 최선을 다해 그에게 오지 말라고 눈치를 줬지만 김신재는 보지 못했는지 계속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허삼중이 이미 피투성이로 저러고 있는데 눈치 없이 달려오는 김신재의 모습에 강청연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저하께서 활 연습을 하시니 그만 소리 지르고 돌아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라.”
마침 사방에 화풀이할 사람을 찾고 있던 이무열은 강청연에게 말했다.
“오라고 하시오.”
김신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가와 갓 만든 복합궁을 내밀었다.
“저하, 소인이 새로 만든 활을 쏘아 보시옵소서.”
이무열은 독특한 모양과 복잡한 구조를 가진 현대식 복합궁을 보며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이것도 활이라고 할 수 있느냐? 나무 바퀴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니. 지금 날 놀리는 것이냐?”
“저하, 이건 도르래라고 하는데 두 바퀴가 한 조로 움직여 힘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사옵니다. 이는 50근짜리 중형 활을 개조한 것으로 쉽게 100근짜리 활에 상당한 힘을 발휘하옵니다.”
김신재는 복합궁에 대해 설명했다.
김신재는 대학교 때 무기공학을 전공했으며 2학년 때부터 이미 동서고금의 다양한 냉병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무열은 김신재의 설명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내가 전쟁터에서 활을 그렇게 많이 쏘아 보았거늘 네가 100근짜리 활이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하는지 알기는 하느냐? 감히 내 앞에서 그 입을 함부로 놀리다니!”
“시도라도 해 보시옵소서. 만약 만족하지 않으시면 제가 허 도위 대신 과녁이 되겠사옵니다.”
동렵 때 김신재의 도움으로 문괴를 따낼 생각이었던 강청연은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김 내관! 잘난 척하지 말고 썩 꺼지거라!”
“부인, 입을 다무시오!”
이무열은 강청연에게 화를 내더니 웃으면서 김신재 손에 들린 복합궁을 받아 화살을 하나 얹은 후 허삼중을 겨냥했다.
“저하, 이 활은 100근까지 힘을 끌어올릴 수 있기에 만약 허 도위를 명중한다면 뼈가 다 부서지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옵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시옵소서!”
김신재가 주의를 주자 이무열이 예상 밖으로 그의 말을 수긍하고 목표를 더 멀리 있는 작은 나무로 바꾸었다.
이무열은 활시위를 당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오늘 하루 종일 50근짜리 활도 제대로 당기지 못했는데 이 복합궁은 쉽게 당겨졌다.
‘설마 50근도 안 되는 건가?’
이무열은 크게 화나면 이성을 잃었기에 강청연은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면서 낮은 소리로 청이를 쏘아보면서 꾸짖었다.
“내 말을 김신재에게 전하지 않은 것이냐?”
“이미 전했는데도 듣지 않사옵니다.”
청이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청이는 김신재가 금방 구사일생으로 살아놓고 왜 또 죽음을 재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김 내관이 자초한 것이니 죽게 되어도 내 탓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