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김신재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나직이 일렀다. “장군께선 청월루에 전용층을 두고 계시지 않습니까? 따님이 그 주인이라고 세자빈을 지킬 자격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건방지다! 어찌 대장군께 그리 무례할 수 있단 말이냐!” 장녀 사위 김태진이 불호령을 내렸다. ‘이 자식이 감히 대놓고 내 수치를 들먹이다니.’ 구상철은 얼굴이 비틀릴 정도로 분노에 휩싸였고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구향연은 사생아였다. 구상철과 장녀 사위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는데 구씨 가문의 족보에는 오르지 못했기에 세상에 드러날 경우 체면이 바닥에 떨어지는 일이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가 어떤 삶을 사는지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다만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을 따름이었다. 연제국 도성 사람이라면 청월루가 대장군의 소유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제왕조차 어찌해볼 수가 없었기에 다들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연제국이 강씨의 나라인지 아니면 구씨의 나라인지, 구백만의 백성들은 이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하여 그러시는지요? 김 장군님, 설마 당조의 세자소부를 해치려는 것입니까? 소인은 덕종 전하께서 친히 하사하신 사품 대신입니다만.” 김신재가 허리에 걸린 황금패를 벗어 높이 들었다. 전하의 뜻을 거스르는 자, 그 마음속에 반역이 깃들어 있음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네놈을 처단한다 한들 어쩌겠느냐! 이 자를 당장 잡아들이라!” 김태진이 명을 내렸고 곧 연제국 병사 몇이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임시로 도위직을 맡고 있던 우림군 부도위가 고함쳤다. “검을 뽑아라! 김 소부님을 사수하라!” 김신재의 등 뒤에 선 백여 명의 우림군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세 걸음 나아가 구상철이 이끌고 온 병사들과 대치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대치 상황에 거리를 지나던 백성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얼마 전 김신재가 거리 한복판에서 구상철을 향해 반역을 고하던 일이 연제국 도성 전체에 퍼졌기에 오늘도 칼바람이 도는 상황을 보자 백성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