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은은 일부러 죄책감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우리 둘이 요즘도 규영 씨 얘기만 나오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규영 씨랑 태빈 오빠가 헤어졌을 때 오빠가 규영 씨한테 20억 원을 보상으로 줬지만 그게 우리 마음의 미안함을 덜어주진 못했죠. 솔직히... 여자 입장에선 너무 상처되는 일이잖아요?”
그 말투엔 미묘한 연민이 섞여 있었지만 속뜻은 뻔했다.
박해은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하면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기를 바랐다.
서규영이야말로 자신의 연애를 망친 끼어든 여자. 게다가 돈까지 받아 챙긴 불쌍한 여자라는걸.
이제 그녀는 더 이상 ‘공격’이 아니라 우월한 자의 동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위치에서 서규영이 무엇을 말하든 그건 단지 비참함을 가리려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설명할수록 서규영만 초라해질 터였다.
게다가 박해은은 알고 있었다. 서규영이 고태빈과 이혼할 때 그에게서 200억 원을 받아 간 것도 그리고 이후 자신에게서 또 200억을 뜯어낸 일도.
그 굴욕을... 그녀는 아직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주변의 반응은 박해은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누구도 수군대지 않았고 누구도 서규영을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회의실은 기이하리만큼의 정적으로 가라앉았고 박해은은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서규영으로부터 자신을 향해 있었다.
그 눈빛 속엔 말 한마디 없어도 느껴지는 차가운 거리감과 노골적인 경멸이 스쳤다.
그 순간 싸늘한 전율이 그녀의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그때 육경민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뭔가 말하려 했지만 서규영은 조용히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눌렀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느긋하게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는 손끝으로 화면을 몇 번 터치했고 잠시 후 스피커에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규영 언니, 다시 인사드릴게요. 저는 박해은. 해빈 테크의 신임 CTO이자 언니 남편의 ‘절친한 여자 사람 친구’예요.”
“고태빈 아내 자리는 사실 내가 원하지 않아서 떠난 거예요.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