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내 눈가에 스친 저항이 연기는 아닌 것 같으니 박윤성의 눈에도 순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곧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생떼 부리지 마.”
나는 이 남자가 늘 이런 말투로 얘기하는 게 너무 싫었고 심지어 수년간 짝사랑해온 저 얼굴도 싫증이 났다.
“나 당신 와이프 맞지? 자살로 입원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걱정 한마디 없는 것도 모자라 지금은 또 몰아붙이듯이 질책하는 거야? 박윤성, 네가 뭔데 날 이렇게 함부로 다뤄?”
나의 분노가 그를 제대로 자극한 듯싶었다.
이 남자는 힘껏 내 손목을 움켜쥐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다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
그의 힘이 너무 셌고 또 마침 손목을 그은 상처 부위를 잡고 있어서 고통이 차올랐지만 끝내 내색하진 않았다.
순간 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박윤성의 두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눈물이 떨어질 듯 말 듯 너무나도 비참한 꼴이었다.
별안간 박윤성이 손을 놓고 내 몸을 돌려서 뒤에서 껴안으며 차갑게 말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앞으론 자살 시동 부리면서 날 협박하지 마라.”
내가 몸부림치니 그는 말대꾸하지 말라는 식으로 더 세게 끌어안았다.
남자와의 힘 차이가 너무 커서 몇 번 움직이다가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나는 결국 포기했다.
다음 날 아침 깨났을 때 박윤성은 곁에 없었다.
대충 옷을 걸치고 아래층에 내려오자 그가 이미 식탁에 마주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집사가 그의 옆에 서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에요, 송지연 씨.”
나는 제자리에 멈춰 섰고 박윤성은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내려와서 아침 먹어.’
비록 아침 식사일 뿐이지만 호화로운 정도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 광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역시 재벌은 다르구나, 아침 식사조차도 이렇게 성대하게 차리는 걸 보면...
나는 박윤성의 맞은편에 앉았고 집사가 시미로를 한 그릇 가져다주었다. 망고 냄새를 맡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망고가 있어요?”
이에 집사가 말했다.
“민서 씨가 특별히 보내주셨어요. 민서 씨가 가장 좋아하는 거라 유럽에서 항공으로 공수해온 거예요...”
나는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졌다.
“안 먹을래요.”
은제 식기가 도자기에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 박윤성은 시선을 올리고 나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적당히 해.”
나는 속으로 억눌렀던 분노를 터트리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망고 안 먹는 것도 방해돼?”
“민서가 보내온 거라고 안 먹는 거잖아!”
박윤성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지연아, 대체 언제 그 질투심 좀 내려놓을래?”
내가?
조민서를 질투한다고?
25살의 송지연이 박윤성 앞에서 어떤 모습일지 잘 모르겠고 어쩌면 비굴하고 옹졸한 이미지로 남았겠지만 우리가 부부인데 내가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조차 모른단 말인가?
이제 막 입을 열려던 순간 집사가 말했다.
“대표님, 민서 씨 오셨어요.”
이어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윤성아, 내가 두 사람한테 방해됐어?”
문 앞에 가녀린 실루엣이 안으로 다가왔다.
집사든 가정부든 모두 그녀와 익숙한 사이로 보였다. 아무래도 자주 다녀서 그런 거겠지.
나는 이 여자가 조민서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또한 집사의 호칭에 주목했는데 명실상부 박윤성 와이프인 내겐 성까지 붙여가며 송지연 씨라고 부르더니 조민서는 민서 씨라고 불렀다.
그 친밀함의 정도는 호칭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25살의 내가 왜 그렇게 조민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박윤성과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조민서를 향한 그의 노골적인 편애에 미치지 못했고 역겹게도 소꿉친구라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비교당하니 누구라도 멘탈이 무너졌을 것이다.
조민서가 아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지연 씨, 손목 그었다고 들었는데...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
나는 코웃음 치며 그녀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