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생각 정리했어.” 나는 입을 열었다. “그날 수영장에 빠졌을 때 박윤성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민서 씨를 구하는 걸 보고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고나 할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인우가 잘라버렸다. “눈 똑바로 뜨고 너를 먼저 구해줄 남자를 찾겠다고?” “아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수영을 배울 때가 됐다고 말이야.” “누가 구해주면 좋지. 근데 구해줄 사람이 없을 때는 알아서 살아야 하잖아.” 고인우는 이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멈칫하더니 한참 지나서야 이렇게 말했다. “그래. 일단 오늘은 먼저 들어가. 나도 잘 고민해 보고 다시 연락할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고인우가 나를 불러세우더니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내 고민이 끝나고 연락했을 때 또 집에 갇혀서 못 나오지 말고. 그러면 내 시간만 낭비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고개를 돌려 고인우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한이 있어도 그 울타리에서 벗어날 거야.” 고인우는 확신에 찬 내 표정에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 들어가 봐.” “가긴 어딜 가. 난 아직 인사도 못했는데.” 듣기 좋은 목소리에 나와 고인우가 멈칫했다. 롤리타 차림을 한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애티 나는 얼굴로 문 앞에 서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찐빵 같은 얼굴을 축 늘어트린 채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언니,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조민서 같은 년이 언니 머리 위로 기어오르게 할 수가 있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눈앞에 선 이 여자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지 기억해 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5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렸으니 이상할 건 없지만 목소리가 어딘가 익숙했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내 머리 위로 기어올랐다는 거예요?” “흥. 아직도 아무 일 없는 척하는 거예요? 이 바닥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억지로 센 척하지 않아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