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박영훈이 온 것이다. 나는 박영훈이 조씨 저택으로 올 줄은 몰랐기에 놀란 표정으로 박영훈을 바라봤다. 박영훈까지 나선 걸 보면 예사로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집에서 화초나 가꾸던 박영훈이 조민서를 위해서 귀찮음도 무릅쓴 것이다.
“송지연, 얼른 나와서 사과해.”
박영훈의 차가운 눈빛이 사람들을 뚫고 내게로 향했다.
“제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요?”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이없었다. 고윤정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지연 언니랑 무슨 상관인데요? 조민서가 가식 떠는 것도 싫고 우리 엄마가 값비싼 주얼리를 선물한 게 싫어서 그런 건데. 저는 조민서 얼굴만 봐도 너무 역겨워요.”
고윤정이 소리를 질렀다.
“조민서가 우리 오빠의 술병을 건드려서 깨트린 건데 왜 우리 오빠가 사과해야 하는데요? 저는 우리 오빠를 위해서 나선 거예요. 지연 언니가 뭐라고 내가 공을 들이겠어요?”
‘말해도 참...’
내가 이 일과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긴 했지만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고윤정은 그래도 모자랐는지 나를 힐끔 노려보며 말했다.
“그 감동한 표정은 뭐예요? 언니를 위해서 그런 거 아니라고요. 착각하지 마요.”
나는 착각 따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덤덤한 표정으로 고윤정을 바라봤다. 게다가 이건 감동한 표정이 아니라 바보를 연민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박영훈을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오늘 제가 사과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고는 고윤정을 바라봤다.
“고윤정이 벌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조민서 씨가 제일 잘 알 거예요.”
조민서가 입을 앙다물며 말했다.
“나도 따질 생각 없어요. 하지만 얼굴이 이 지경이 된 건 다들 봤잖아요. 책임을 묻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조씨 가문을 어떻게 보겠어요?”
이제 인자한 척한 이상 끝까지 이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조민서는 늘 그랬듯 원하는 게 참 많았다.
“내가 알기로는 고윤정이 조울증도 다른 정신 병력도 없는데 아무 이유 없이 조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