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도 방법을 찾지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에둘러서 박영훈을 찾아와 얘기했다. 나에게 박영훈은 늘 오만한 자태였는데 조민서 앞에서는 자애롭기만 했다. 나는 박영훈을 따라가기 싫어 고집을 부렸다.
“무슨 일 있으면 여기서 말씀하세요.”
박영훈의 안색이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지더니 호흡이 가쁜지 가슴을 움켜잡고 힘껏 숨을 들이쉬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얼른 앞으로 다가섰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회장님, 왜 그러세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고준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송지연 씨. 누가 할아버지를 그렇게 자극해요?”
‘이제 와서 내 할아버지다?’
나는 박영훈이 조민서와 박윤성의 할아버지지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박영훈이 그런 나를 얼음장과도 같은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자. 할 말이 있어서 그래.”
고준호가 내 옆으로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할아버지 몸도 안 좋은 데 따라가요. 무슨 일 생기면...”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박영훈을 따라갔다. 박윤성은 전에 내게 박영훈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별로 그런 티가 나지 않았고 사람을 욕할 땐 여전히 힘이 차고 넘쳤다. 그런 사람이 내 앞에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살인 누명을 쓰게 될 텐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씨 저택에서 조용한 방을 찾아 들어간 박영훈이 걸음을 멈췄다. 걸음이 느리긴 했지만 힘이 있어 오늘내일하는 노인 같지 않았다
“아무 데나 앉아”
박영훈도 앉기 전이라 나는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아 뒤에 가만히 서 있는데 박영훈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너 예전과 많이 달라졌구나.”
“그래요?”
내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많은 일을 겪었는데 예전과 같으면 너무 미련한 거 아닌가요?”
박영훈이 콧방귀를 뀌더니 자리에 앉았다.
“내게 불만이 많다는 거 안다. 전에도 온갖 공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