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허소원은 아까의 민망했던 분위기를 털어내고 다시 평소처럼 차분한 얼굴로 정시훈을 불렀다. “정 비서님, 잠깐 이쪽으로 와보세요.” 그녀는 미리 준비해둔 약재를 정시훈에게 건네며 덧붙였다. “이건 물에 넣고 15분 정도 우리면 돼요. 피 돌게 하고 멍을 풀어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약은 식후에, 하루 세번. 한 번이라도 빠지면 안 됩니다.” 정시훈은 그녀의 말을 하나하나 새기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맨디 선생님. 꼭 잊지 않겠습니다.” 허소원은 약을 모두 건넨 뒤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자리를 뜨려 했다. 문을 나서기 직전, 잠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도 오늘처럼 이 시간에 치료할게요.” 그리고 문을 막 열려던 찰나, 박은성이 그녀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았다. “이모, 잠깐만요...” 박은성의 작고 귀여운 목소리에 허소원은 멈춰 서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이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예쁜 이모, 고생하셨어요. 이제 저녁 시간이니까 우리 같이 밥 먹어요! 아빠 치료해주셔서 감사 인사로요.” 허소원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어...? 너 혹시... 나 기억하는 거야?” 박은성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아봤어요.” 허소원은 아이의 뜻밖의 말에 잠시 놀랐다. ‘분명 복장도 다르고 목소리도 바꿨는데... 이 아이가 어떻게 알아본 거지?’ 허소원은 순간 허탈한 듯 피식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눈썰미 좋은데?” 그때, 뒤쪽에서 박태진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전에 은성이랑 본 적 있습니까?” ‘당연하지. 같이 밥도 먹었는데.’ 허소원은 대답 대신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박은성이 먼저 씩씩하게 나서서 대답했다. “봤어요! 그날 병원에서 아빠한테 엄청 대단한 의사 선생님 만났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이 바로 이 예쁜 이모예요. 그런데 아빠는 제 말을 안 믿었죠... 결국엔 아빠가 찾은 사람도 이모였네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