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저도 모르게 반응했다.
남자의 손길에 어느덧 숨결마저 흐트러졌다.
그는 어떤 부위가 민감한지 훤히 알고 있었다.
허소원은 위기를 감지했다. 욱신거리는 심장은 이건 아니라고 경고를 보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무릎을 들어 올려 남자의 다리 사이를 가격하려고 했다.
박태진은 재빨리 눈치채고 한 손으로 공격을 막아냈다.
결국 기습에 실패하고 다리만 붙잡힌 꼴이 되었다.
남자가 코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의 자세는 야릇하기 그지없었다.
가녀린 턱을 잡은 박태진의 얼굴에 욕망이 고스란히 드러났고, 입가에 묻은 핏자국까지 더해 요염할 정도로 섹시했다.
이내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 못 참겠어?”
허소원은 숨을 헐떡이며 노발대발했다.
“개소리하지 마! 이 짐승아, 당장 놓지 못해?”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워낙 미미한 반항이라 박태진 앞에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완전히 제압당하는 신세가 되자 급한 나머지 눈 딱 감고 그의 목을 깨물었다.
박태진은 본능적으로 피했지만 그래도 한발 늦었다.
결국 쇄골을 세게 물렸다.
“윽!”
박태진은 숨을 들이켜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내 고개를 숙여 품에 안긴 여자를 바라보았다.
진짜 화가 난 듯 인정사정없이 물어뜯는 바람에 쇄골에서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결국 저도 모르게 싸늘해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만해.”
허소원은 콧방귀를 뀌더니 물러서기는커녕 되레 힘을 더 주었다.
어느덧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쓰레기 같은 놈이 감히 강제로 키스하다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은 그녀를 보자 박태진은 목덜미 뒤로 손을 뻗어 살살 만졌다.
이는 허소원의 민감 부위였다.
허소원은 등골이 찌릿하면서 무의식중으로 신음을 내뱉었고, 은근히 야릇하게 들렸지만 끝까지 쇄골을 물고 놓지 않았다.
박태진이 어이없는 듯 피식 웃었다.
“강아지야?”
그녀는 못 들은 척 더욱더 세게 깨물었다.
순간 입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서둘러 입을 벌리고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깨문 자리를 바라보자 남자의 쇄골에 선명한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고 피멍이 들어 섬뜩할 지경이었다.
이렇게까지 세게 물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는 듯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또한 박태진이 자초한 것이지 않은가?
허락도 없이 키스한 벌이니까 쌤통이었다.
박태진이 손을 들어 쇄골의 상처를 확인하는 틈을 타서 허소원은 그를 힘껏 밀어냈다.
그리고 잽싸게 품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말했다.
“네가 먼저 건드렸으니 내 탓 아니야. 이번 기회에 교훈을 제대로 얻었으면 좋겠어. 만약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경찰에 신고해서 체포할 거야!”
경고를 끝으로 박태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열고 도망갔다.
박태진은 그녀를 놓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지라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뒤를 쫓았다.
“허소원, 거기 서! 아직 할 말이 남았다고.”
이런 상황에서 멈추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도 아니고, 이미 한 번 당한 이상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엘리베이터로 뛰어 들어갔다.
한발 늦은 박태진은 문이 닫히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낯빛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래, 가!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
말을 마치고 나서 휴대폰을 꺼내 정시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정시훈은 소름이 돋았고 잽싸게 대답했다.
“술 취한 놈들을 처리하고 돌아가는 길입니다. 무슨 일이죠? 말씀하세요.”
박태진은 주정뱅이를 떠올리자 노발대발하며 명령을 내렸다.
“손모가지를 부러뜨리고 나서 당장 허소원의 행방을 조사해. 최대한 빨리!”
방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상사의 못마땅한 말투로 보아 사모님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졌을 거로 짐작했다.
정시훈이 서둘러 대답했다.
“네!”
...
반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허소원은 심장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방금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헝클어진 옷차림은 야릇한 느낌마저 들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다행히 엘리베이터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옷매무새를 정리했고, 실수로 입술을 만지는 순간 찌릿한 통증에 무의식중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키스 한 번에 입술이 부어오를 정도라니.
허소원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속으로 박태진을 연신 저주했다.
뻔뻔스러운 자식!
아들까지 있다는 유부남이 전처에게 이런 몹쓸 짓을 하다니.
짐승만도 못한 놈!
다시 마주치게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허소원은 차마 이런 몰골로 룸에 돌아갈 수는 없었다.
결국 심가을에게 전화를 걸어 급한 일이 생겨 먼저 가겠다며, 나중에 밥을 사주겠다고 말했다.
심가을이 대답했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사람을 보내 찾으려고 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야.”
허소원이 미안한 말투로 말했다.
“응, 걱정하지 마. 친구들한테도 미안하다고 대신 전해줘.”
“괜찮아. 얘들이 노느라 정신이 없어서 네가 사라진 것도 모를 거야. 얼른 가서 일 봐.”
“알았어. 이만 끊을게.”
허소원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박태진을 마주칠까 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