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43장

이천후의 두 눈은 피를 흘릴 듯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검황 기문룡이 불쑥 끼어들어 모든 걸 망쳐놓자 그는 치를 떨며 이를 갈았다. 이번 혼전은 이미 개인 간의 원한을 넘어섰다. 이건 분명히 인간족과 요족의 천교들이 목숨을 걸고 맞붙는 결전장이었다. 곧 전장을 지켜보던 요족들은 상황을 꿰뚫고 떼를 지어 만악 성자를 돕기 위해 전장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가장 악랄한 건 바로 검황 기문룡이었다. 인간족의 성자라는 작자가 도리어 요족 편에 붙어 같은 종족의 등에 칼을 꽂다니, 이천후가 확실히 이기던 싸움을 송두리째 진흙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저놈들 다 쳐죽여!” 사방팔방에서 밀려든 요족 생령들이 파도처럼 몰려들어 죄다 적산 진영을 향해 합류하고 있었다. 반면 인간족 측은 어둠 속에서 전장을 관망하던 고수들이 하나같이 모른 척 입 다물고 있었다. 황촌을 도우러 나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멸족의 위기가 눈앞에 닥쳐야 인간은 비로소 하나로 뭉친다고 했지.” 초대 인황의 이 일침이 오늘 또다시 부끄러운 각인처럼 새겨졌다. “전부 죽여버려!” 이천후는 완전히 살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일월륜반을 휘둘러 적을 짓이기고 오른손으로는 천조신곤을 휘둘러 무리를 쓸어냈다. 그의 앞을 가로막는 요족 생령들은 머리채가 하늘로 솟구쳤고 뿜어져 나온 피기둥이 하늘의 절반을 선혈로 물들였다. 이제 천지는 온통 피로 물들었고 이천후는 요족 무리 속을 좌충우돌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엔 피바람과 핏비가 몰아쳤으며 발밑에 쌓인 시체 더미는 참호보다도 더 높았다. 물론 요족 안에도 강자들은 있었다. 십여 명의 요괴가 살진을 짜 그를 포위했고 칼과 검, 독기와 뇌전이 얽혀 그의 목숨을 노리고 내달렸다. “죽어! 전부 다 죽으라고!” 이천후의 온몸에서 금빛 기운이 폭발하듯 솟구쳐 고치처럼 그를 감쌌고 그의 등 뒤에서 사선으로 걸린 초승달이 폭발하듯 일그러졌다. 그와 함께 산예의 허공 환영이 솟구쳤고 일곱 가지 색으로 빛나는 용령을 두른 채 전장을 휩쓸었다. 그 앞에서 요병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