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0장

서태극의 날 선 경고 앞에서도 이천후는 추호의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목소리를 단단히 굳혀 전장을 울렸다. “그 말은 내가 똑똑히 새겨 둘게! 만약 서현지가 우리 황촌에서 조금이라도 모욕을 당한다면 네가 굳이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기 전에 나 이천후 스스로 손발을 묶고 찾아가 참죄할 거야!” “그땐 나를 베든 찌르든 네 뜻대로 해! 하늘과 땅이 증인이고 오늘 이 자리에 선 모든 자들이 증인이 될 거니까!” 그 울림은 마치 무쇠를 쳐내린 듯 단호하고 분명했으며 이천후가 한 마을을 이끄는 이장으로서의 기개와 책임감을 여실히 드러내어 남아 있던 의혹과 불신을 단숨에 잠재웠다. 서태극의 눈빛은 한층 누그러졌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이천후 너머로 돌려 김치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를 절체절명의 벼랑 끝까지 몰아세웠던 자가 지금은 여동생을 맡겨야 할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김치형!” 서태극이 두 손을 모아 포권을 취했다. “내 누이는 성정이 교만하고 제멋대로야. 훗날 황촌에 머무는 동안 혹여 거칠게 군다면 부디 네가 살펴 주길 바라.” 이에 김치형은 군더더기 없는 단 한 마디만을 내뱉었는데 그 한마디는 산보다 무겁고 바다보다 깊었다. “상대가 나 김치형의 시신을 밟고 지나가지 않는 한 반드시 서현지를 무사히 지켜낼 게.” 서태극은 그를 깊게 응시하다가 다시 고집스레 입술을 깨물고 있는 여동생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세계황주의 은은한 광채에 몸을 감싸인 채 서서히 몸을 돌렸다. “가자!” 그의 날카로운 명령과 함께 곁에 있던 서민국과 서준걸이 동시에 따랐다. 서태극은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차련에 올랐고 순간 저음의 진동과 함께 수레는 하늘로 떠올랐으며 열 명의 호위무사가 그림자처럼 뒤따르며 호위했다. 금빛 유광은 긴 하늘을 가르며 찰나에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남겨진 것은 복잡다단한 두 쌍의 눈빛뿐이었다. “형님...” 사라지는 차련을 바라보며 서민국과 서준걸은 주먹을 쥐었다. 짓눌린 듯한 분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