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4장

카직. 쾅. 칼날은 끝내 완전히 내려오지 못하고 단지 탁자 모서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굵은 나무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며 탁자 모서리 한쪽이 산산이 부서졌다. 거대한 충격에 탁자가 요동치자 그 위에 놓인 그릇과 술병이 들썩거리며 허공에 떴다가 와장창 바닥에 쏟아졌고 국물과 술이 사방에 튀어 어수선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김봉의 거대한 상체가 앞으로 기울며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흰옷을 입은 사람 앞에 거의 들이밀리다시피 다가왔다. 그는 탐욕스럽게 눈을 번뜩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스스로 얌전히 옷을 벗어 우리 눈을 즐겁게 할래? 아니면 내가 직접 손을 써서 네 옷을 하나하나 벗겨 줄까? 응?” ... 김봉이 추악한 위세를 터뜨리던 찰나 허름한 주점의 낡은 문발이 살짝 젖혀졌고 한 쌍의 그림자가 조용히 안으로 들어서며 뜨겁고 눅눅한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선두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이천후였다. “저 둘이 네가 나를 급히 화염성까지 오게 만든 이유라는 거냐?” 이천후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며 호기심 섞인 시선으로 황보재혁을 바라보았고 황보재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 흰옷의 아가씨 때문이죠.” “흰옷의 아가씨?” 이천후의 눈썹이 미세하게 들썩였다. 그는 다시금 시선을 그쪽으로 돌려 그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그 곡선을 따라가 흰옷에 감싸인 몸매와 세상 남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녀린 목선과 손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천후는 즉시 깨달았다. 저건 어찌 보아도 남자가 아니었다. 남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그녀의 미모를 가리고 흐리게 만들기는커녕 더 짙은 신비로움과 금욕적인 매력을 덧입혔다. 흔히 여자를 물에 비유한다지만 눈앞의 여인은 구천 위에서 가장 순수하게 응결한 현빙 성수와도 같았다. 그녀의 살결은 얼음을 깎아낸 듯 투명하고 고왔으며 그 맑고 차가운 아름다움은 손끝으로 살짝 닿기만 해도 청명한 선수가 맺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나라조차 기울일 만한 외모 말고는 딱히 뭐가 특별한지는 모르겠군. 네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