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47장

서현지의 눈에 수많은 생명을 도륙하고 거칠고 패도적인 대마두 이천후가 지금 무려 부하 2백여 명 전원에게 사람마다 오문 혈과를 한 알씩 나누어 주고 있다니. ‘황당해!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서현지의 머릿속을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불신이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토록 후할 수 있단 말인가. 성급 대전을 불러올 만큼 귀한 신물을 마치 사탕 나눠주듯 아무렇지도 않게 베푸는 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천후는 미쳤거나, 아니면 위선의 극치로 연극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황촌의 여자 무수 몇 명이 붉은 비단을 깔아 놓은 옥반을 조심스럽게 들고 줄줄이 걸어나오는 순간 서현지의 입은 저절로 벌어졌고 두 눈도 커져 버렸다. 옥반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은 바로 혈문 도과였다. 그 열매는 대략 귤만 한 크기로 핏빛처럼 붉고 수정처럼 투명하여 마치 가장 순결한 보석을 그대로 깎아낸 듯 했다. 껍질 위에 다섯 줄기 황금빛 무늬가 생생하게 흐르며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유영했고 그로부터 거대한 생명의 정기와 유혹적인 이향이 파도처럼 흘러나왔다. 기운으로 보나 자태로 보나 전부 진짜 오문 천기과였다. 그녀는 사문 혈과를 먹어 본 적이 있었기에 결코 헷갈릴 리가 없었다. 눈앞의 오문 천기과는 서현지가 대요 황실에서 보았던 사문 혈과보다 빛깔도 내포된 힘도 열 배 이상 강렬했다. 곧이어 오문 혈과가 하나하나씩 황촌의 모든 이에게 나누어졌다. 그것을 받아든 이들은 마치 천하의 보물을 얻은 듯 전신을 떨며 벅찬 기쁨에 휩싸였다. 서현지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모든 상식이 뒤엎히는 듯한 충격이 몰려왔다. 눈앞의 장면은 그녀가 고정관념처럼 간직해온 이천후의 이미지를 산산이 부숴버렸다. 이토록 아낌없고 사심 없는 지도자가 정말로 천하의 마두이자 피로만 길을 닦아온 흉악무도한 존재일 수 있을까? 서현지의 손끝에서 늘 구르던 염주는 언제부터인가 멈춰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서서 모든 이들의 열렬한 추앙을 받으며 두 손을 뒤로 하고 미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