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서예은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소를 띠며 나직하게 말했다. “응, 방금 끝났어. 넌 어디야?” 박시우가 낮게 웃었다. “네 바로 뒤.” 순간, 서예은이 멈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정말로 그가 차 옆에 기대 서서 다정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핏이 완벽한 검은색 수트를 입은 그의 모습은 조명 아래 더 빛났다. 서예은은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얼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떻게 온 거야? 오늘 밤 약속 있다고 했잖아.” 박시우는 그녀의 허리를 슬쩍 감싸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게 뭐가 중요해. 너 혼자 두기 싫어서 일찍 끝냈지.” 순간, 서예은의 마음이 따뜻하게 차올랐다. 그를 올려다보며 수줍게 웃었다. “고마워... 자기야.” 그 말이 아직은 어색했지만 박시우는 오히려 그 순간을 즐기듯 미소 지었다. 박시우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낮게 말했다. “가자. 집에 가서 얘기하자.” 서예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차에 올랐다. 차는 천천히 행사장을 벗어나 밤 속으로 사라졌다. ... 그 모습을 행사장 입구에서 지켜본 주현진의 표정이 굳었다. 박시우와 서예은이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혀 손이 무의식적으로 꽉 쥐어졌다. 옆에 있던 서지안이 이를 보고 입꼬리를 비틀었다. “언니, 참 빠르다? 벌써 다음 남자 찾았네.” 주현진의 눈빛이 한순간에 서늘해졌다. “가자.” 주현진의 단호한 목소리에 서지안은 순간 입을 다물었지만 속에서는 부글부글 분노가 끓었다. ‘서예은, 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 차 안, 둘 사이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집 앞에 도착했지만 서지안은 바로 내리지 않고 유혹하듯 속삭였다. “오빠, 위로 올라가서 한 잔 할래? 나 새 속옷 샀는데... 연두색 레이스.” 평소 같으면 웃으며 따라왔을 주현진이 이번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다음에. 오늘은 늦었어. 먼저 쉬어.” 차갑게 잘린 대답에 서지안은 속이 쓰라렸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조심해서 가.” 그가 떠나자 서지안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