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나는 박지한의 예민한 반응에 깜짝 놀랐지만 집안 사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머뭇거리며 애써 둘러댔다. “집안일은 아니야. 그냥... 친구 하나가 좀 안 좋은 일이 생겼거든. 가족도 없어서 혼자야. 내가 좀 걱정돼서 가보려고.” “어떤 친구야? 나도 아는 사람이야?” 나와 박지한은 어릴 적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다.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그도 알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대학교 친구야. 오빠는 모를 거야.” 박지한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너, 해외에서 대학 다녔잖아.”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응. 맞아. 근데 걔도 화교야. 최근에 국내로 들어왔는데... 아직 얼굴도 못 봤어.” 박지한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 내일 돌아갈까?”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 내일 바로?” 박지한은 웃으며 나를 다시 앉히고 말했다. “이렇게 마음이 딴 데 가 있는데 여기 더 있어봤자 의미 없지. 차라리 돌아가서 네 친구 보러 가.” 다음 날, 우리는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작은 섬을 떠나기 전, 나는 한참이나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아쉬운 마음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 박지한이 옆에서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아쉬워할 거 없어. 어차피 이 섬은 온 씨잖아. 네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어.” 긴 비행 끝에 국내로 도착하자 박지한은 내 친구를 함께 만나보겠다며 따라나섰지만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며 따돌렸다. 그리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걸 확인한 후, 조용히 치료센터로 향했다. 치료센터는 평화로웠다. 재활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복도를 오갔고 겉보기엔 여느 병원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 안쪽, 깊숙한 곳에선 아무도 모르는 진짜 현실이 있었다. 철문 너머에서는 절규가 이어졌다. 피가 마를 듯한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의 소리. 엄마는 문 앞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고 아빠는 고개를 숙인 채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그 철문 안에는 금단 증상으로 몸부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