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조용한 곳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주정연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나연 씨! 찾았어요. 큰아가씨 찾았어요.” 나는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찾았으면 됐네요. 우리 부모님은요? 같이 계셔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사모님은... 기절하셨어요. 회장님도 상태가 좋지 않아요.” 내 표정이 굳어졌다. “무슨 일이에요? 설마... 아직도 온시연이 돌아가길 거부한 거예요? 그 남자친구는요?” 주정연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고 한참을 망설이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돌아갈 수가 없어요... 큰아가씨가 마약을 했어요.” “뭐라고요?” 나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세상이 눈앞에서 빙빙 도는 듯한 기분이었다. ‘언니가 마약을 했다고?’ “나연 씨, 전화로는 다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전송해드릴게요.” 잠시 후 도착한 자료를 보며 나는 그제야 모든 전말을 알게 됐다. 처음 온시연이 돈을 요구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미 마약에 손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은 그녀의 외국인 남자친구, 케빈이었다. 그녀가 말했듯 케빈은 분명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가문도, 저택도 있었지만 그는 약혼자가 있는 사람이었다. 온시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망설임 없이 그의 나라로 따라갔다. 자료에 적힌 케빈의 정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방탕하고 물란하며 술과 마약, 도박까지 일삼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그 나라에서는 마약조차 합법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온시연이 무사할 리 없었다. 나는 오랜 침묵 끝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지금 언니는 어떻게 됐어요?” 주정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병원에 데려갔어요. 사모님은 충격으로 실신하셨고 회장님 혼자 상황을 정리 중이세요.” 나는 온시연을 좋아한 적도 없고 솔직히 미워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걸 바라진 않았다. “지금 어디에요? 당장 갈게요.” 주정연이 대답하려던 찰나, 누군가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아버지의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