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선 남자는 큰 아버님의 아들인 박호진이었다.
박호진의 미간이 박지한과 유독 비슷했지만 박호진이 나이가 더 많다 보니 박지한보다는 더 성숙해 보였다.
박지한과는 어릴 때부터 친했지만 박호진과는 별다른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만나면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그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것도 결혼식 당일이 처음이었기에 나는 이곳에서 그를 다시 만난 게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박호진은 내가 놀랄 줄 알았다는 듯이 당황하지도 않고 나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내가 온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요? 나도 호연 그룹 이사인데. 우리 집 일에 내가 나서는 게 이상해요?”
그의 말에 말문이 막힌 나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아주버님은 사성 쪽 프로젝트 담당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왜 갑자기 여기로 오신 거예요?”
사실 사성 프로젝트도 박지한이 맡기도 되어있었지만 한여진의 임신으로 어르신이 그 프로젝트를 박호진에 내어줬었다.
그래서 그날 사모님들의 꽃꽂이 수업에서 이모연의 어깨가 아주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박호진은 차를 한잔 마시며 여유롭게 대꾸했다.
“아직 못 들었나 봐요? 이 프로젝트 내가 맡아서 하기로 했어요. 아, 박지한이 해외에 있으니까 소식이 좀 늦을 수도 있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프로젝트를 맡다니요?”
박무철이 경영에 소질이라곤 전혀 없는 박호진에게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내줬을 리 없기에 나는 당황하며 물었다.
“박지한이 사고 쳐서 그런 거잖아요. 해외에서 그 일 처리해야 하니까 이 프로젝트를 맡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대신 들어온 거예요.”
박지한이 말을 하지 않으니 해외 사업에 생겼다던 문제가 이렇게 클 줄은 미처 몰랐었다.
어쩐지 매일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오더라니, 나는 그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박지한과 우리 설계팀이 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게 더 큰 문제였어서 한 번 더 따져 물었다.
“그럼 지한 씨가 생각한 대로 일 진행하면 되잖아요. 뭐 하러 기획안까지 고쳐요?”
“역시 결혼한 여자라 아무것도 모르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