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민소율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품에 안긴 심민아는 잠결에도 살짝 뒤척이며 박진호의 품속을 더 파고들었다. 박진호의 눈썹이 미세하게 찌푸려졌고 그의 온몸에서 불쾌한 기운이 서서히 흘러나왔다. 아내가 품 안에서 잠들어 있는 지금, 그 누구라도 방해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볼 일이 있으면 다음에 얘기합시다.” “박 대표님.” 하지만 민소율은 평소의 부드러운 성격과 달리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박진호의 앞을 막아섰다. 옆에 있던 한동욱은 민소율이 박진호의 노여움을 살까 걱정되어 서둘러 그녀를 도왔다. “대표님, 민소율 씨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씀드리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박진호의 시선이 잠시 한동욱에게 머물렀다가 곧 민소율에게로 옮겨갔다. 품속의 심민아가 깰까 봐 그의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말해 봐요.” 민소율은 한동욱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만약 어디 멀리 가게 된다면... 그때는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언젠가 다가올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있었기에 남겨질 여동생이 걱정돼 미리 든든한 보호막을 마련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직 풀리지 않은 또 하나의 마음의 응어리, 둘째 여동생에 대한 깊은 죄책감도 있었다. 박진호는 그 말뜻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민소연이 심민아의 사람이라면, 나는 누구도 그 애에게 손댈 수 없게 할 겁니다.” 말의 의미는 명확했다. 심민아의 사람이라면 지켜줄 테지만 아내와 무관한 사람까지 책임지진 않겠다는 뜻이었다. 민소율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심 대표님한테 부탁할 걸 그랬나 보다...’ 차 안에서 한동욱은 마음이 딴 곳에 있는 듯했다. 차가 이미 멀리 떠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백미러로 아련하게 민소율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민소율 씨가 마음에 드나?” 뒷좌석에서 박진호가 불쑥 물었다. 한동욱은 흠칫 놀라 서둘러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