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박태진은 허소원을 따라잡아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왔다. 안타깝게도 그가 레스토랑 문 앞에 도착했을 때 허소원은 이미 자리를 떠났다. 뒤따라 내려온 조정순이 손자를 향해 소리쳤다. “태진아, 할머니랑 같이 갈까?” 박태진은 할머니께서 혼자 계셨기에 거절하지 않고 정시훈에게 운전을 부탁했다. 차에 오른 후 할머니는 계속 침묵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에 초원이랑 만난 적 있지?” 박태진은 부인하지 않았다. 조정순도 손자의 묵인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방금 레스토랑에서의 광경으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손자가 평소 누굴 그렇게 보호하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넌 무슨 생각이니?” 박태진은 별다른 표정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별생각 없습니다.” “넌 정말 입만 살았어.” 조정순은 손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었기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었다면 방금 왜 그 아이를 변호했니? 그건 네 성격답지 않아.” 박태진은 눈가를 긴장시키며 아니라고 버티었다. “모두 할머니의 오해입니다. 전 그저 허씨 가문의 작태가 못마땅할 뿐이었어요.” 조정순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만약 과거 일이 사실이라면 허씨 가문 처지에서 보면 초원의 행동이 실수일 수 있지. 허씨 가문이 그 아이를 키웠다는 점만으로 초원이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불효로 보일 거야. 게다가 과거 일까지 더해지면 더 불리하지.” 말을 잇는 조정순의 눈빛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 아이도 정말 많이 변했어. 예전엔 순종적이고 온화했는데 지금은 날카롭고 당당해. 누구도 함부로 못 할 기세야.” 그 말끝에 조정순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박태진은 그녀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했다. “할머니는 왜 기뻐하시는 거죠?” 조정순은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좋은 변화라서 그렇지. 그 아이가 예전엔 너무 순했어. 나쁜 건 아니지만 너무 착해서 오히려 문제였어. 그땐 장차 피해 볼까 봐 걱정했는데.” 조정순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결국 네 녀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