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같은 시각 2층 서재 안. 일 처리 중이었던 박태진은 창밖에서 들려오는 요란스러운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정시훈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정시훈은 고개를 들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제가 가서 볼게요.” 그는 말을 마치고 급히 일어나 창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엉망진창이 된 정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잔디마저 뒤집혀 있었는데 온전한 잔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정시훈은 멍해진 채 박태진에게 보고했다. “도련님이 또 로봇을 가지고 땅을 파며 집을 부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왔던 디자이너의 연락처가 아직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디자이너의 번호를 찾아 연락하려 했다. 이 말을 들은 박태진은 아들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몸을 일으키며 정시훈에게 말했다. “일단 가보지.” 정시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태진을 부축하여 아래층 현관에 도착했다. 눈앞의 참혹한 현장을 본 정시훈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런, 집 안까지 당했네요.” 탁자와 의자가 겹쳐져 있는 모습은 꽤 예술적이었지만 캐비닛과 테이블 위의 장식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거실에서 발을 내디딜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앞을 볼 수 없는 박태진은 정시훈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뭘 한 거야?” 정시훈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별거 안 했어요. 그냥 가구 배치를 바꿨을 뿐이에요.” “박은성을 찾아봐.” 박태진의 눈살이 더욱 깊게 찌푸려졌다. 그는 지시를 내리고 정시훈과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밖에 있던 집사가 그들을 보고 급히 달려와 말했다. “대표님, 어서 작은 도련님을 말려주세요.”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로봇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호통쳤다. “박은성, 당장 그만해.” 하지만 박은성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리모컨을 계속 누르며 멈추지 않았다. 박태진의 얼굴에 분노가 서리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정시훈이 서둘러 말했다. “작은 도련님이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