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05장

“이 자식이!” 분천원왕을 바라보던 기린신자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당장이라도 손바닥으로 후려쳐 눌러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치 빠르고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했건만 순식간에 자기 정체를 까발려버리다니. 이천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일부러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옥린 도우께서... 설마 기린족이셨습니까?” 기린신자는 더는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분천원왕을 한껏 노려보았다. 한편 옆에 서 있던 용명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린신자가 이천후에게 분노를 터뜨리면 자신이 나서서 이천후를 도우며 더 큰 인연을 쌓을 수 있을 테니까. 봉무 역시 그와 같은 계산을 품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요족 삼대 거두였지만 실제로는 물밑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사이였다. 그러나 기린신자가 어찌 멍청하단 말인가. 죽은 건 어디까지나 기린마였지, 순혈 기린족이 아니었다. 굳이 그런 잡혈의 죽음을 두고 이천후와 적을 질 이유는 없었다. 기린족의 방계 혈통은 수도 없이 많았고 백 명쯤 죽는다고 한들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용명, 봉무, 분천원왕이 기린신자가 격노하길 기다리던 찰나 정작 기린신자는 시원스레 웃더니 이천후의 손을 붙잡으며 다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고 시절부터 우리 기린족은 혈통의 순수를 지키라는 규율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기린마는 우리 기린족과 마족의 혼혈, 곧 우리 족속의 수치입니다! 도우께서 그것을 삶아 드신 건 오히려 우리 기린족의 치욕을 씻어주신 일이지요.” “잘 끓이셨습니다!” 기린신자는 엄지손가락을 척 하고 들어올렸다. 용명, 봉무와 분천원왕은 놀라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숨을 간신히 삼키던 도요와 진기범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린신자가 기린족의 혈기를 감지했을 때는 모두가 큰 화를 피할 수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기린신자는 화는커녕 손뼉까지 치며 칭찬할 줄이야.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