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하유민의 말을 들은 임수아는 길고 눈을 깜빡이며 다소 억울한 듯 물었다. “유민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요?” 하유민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만 좀 하세요. 수아 씨,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아직도 시치미 뗄 건가요? 제가 정말 바보인 줄 아세요? 일부러 그런 거 제가 모를 줄 아냐고요!” 하유민이 짜증을 내며 물었지만 임수아는 여전히 눈을 깜빡이며 순진한 척했다. “그런 게 아니라 전 진짜로 유민 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유민은 이를 악물면서 끝까지 임수아에게 따졌다. “수아 씨, 제가 싫어서 저랑 같이 자기 싫었던 거죠? 그래서 일부러 몽유병인 척하면서 칼 들고 절 찌르려고 한 거잖아요, 저 겁주려고! 다시는 한밤중에 수아 씨 못 찾아가게 하려고 그랬던 거 아니에요?” 임수아의 얼굴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몽유병 얘기는 저도 들었어요. 미안해요, 유민 씨.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너무 피곤하고 제대로 쉬지를 못해서 그랬나 봐요. 잠결에 그런 일이 생긴 것도 모르고...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몽유병이 아니라 그냥 우연일 거예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유민 씨, 오늘 밤에도 저랑 같이 잘래요?” 임수아는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임수아가 오히려 다정하고 배려 깊은 태도로 나오자 하유민은 점점 초조해졌다. 그녀는 몰래 녹음기를 켜놓고 이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유민은 가족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다. 임수아라는 여자가 얼마나 교활한지 꼭 증거로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임수아는 끝까지 걸려들지 않았다. 임수아는 붉은 입술을 살짝 다물며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민 씨, 걱정 마요. 앞으로도 쇼핑 같이 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같이 가줄게요. 마음에 드는 가방 같은 거 있으면 예전처럼 저한테 의견 물어봐도 되고요.” “하지만 예전처럼 제가 사주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요즘은 돈이 모자라거든요.” 하유민의 얼굴은 순식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