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화

임수아는 두 눈을 깜빡이면서 정지안을 쳐다보았다. ‘사랑하는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 여자 외에는 다른 설명이 없네.’ 정지안이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았으니 임수아는 머릿속에 그린 상황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되었다. 임수아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준비되었어요.” “시작해요.” 임수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상상 속의 광경을 그려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분위기가 확연히 뒤바뀌었다. 임수아는 연회에 참석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때 그녀의 곁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어머, 윤 대표님!” 그 말을 들은 임수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그쪽을 쳐다보았다. 윤시혁을 발견한 그녀는 두 눈이 반짝였다. 임수아는 반가운 마음에 윤시혁을 향해 손을 흔들려고 했지만 그의 팔을 감싸안고 있는 서은채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임수아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두 사람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서은채는 윤시혁의 품에 안겨서 애교를 부렸고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서은채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누가 봐도 하늘이 맺어준 한 쌍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수아는 코끝이 찡했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윤시혁을 향한 사랑을 고이 접어두었다. 이제는 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그녀는 재빨리 뒤돌아서서 손으로 닦았다. 임수아는 심호흡하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추슬렀다. 다시 돌아섰을 때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연회를 즐겼다. 몇 초 후, 임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정지안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그녀의 연기를 감상하고 있던 정지안은 마음이 복잡했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훌륭한 성우는 연기의 본질을 알고 있다는 말이 생각났어. 더빙도 연기나 마찬가지니까...’ 정지안은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