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두 사람은 무너져 내린 공간 속에서 운 좋게 삼각형으로 생긴 틈을 만나 가까스로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소는 점점 희박해졌고 최소아는 고개를 젖힌 채 밀폐 공포증 때문에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웅크린 몸은 굳어 갔고 귓가에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만 울렸다. 머릿속에는 주마등 같은 장면들이 스쳤다.
“강진혁 씨.”
그녀는 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내가 왜 당신이 아니면 안 되는지 알아요? 아빠가 아직 하버시아에 있을 때 저한테 정말 못되게 굴었어요. 제가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제 머리를 물속에 누르기까지 했죠. 어느 날 도망쳐 나와 골목에 숨어 온몸을 떨고 있었는데... 그때 나타난 사람이 당신이었어요. 당신은 나한테 빵을 건네서 살려 줬어요. 그리고 자신이 강진혁이라고 했고, 저는 그 이름을 25년 동안 잊지 않고 있었어요.”
강진혁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어둠 때문에 그의 표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소아, 너는 영원히 과거에만 머물 수는 없어.”
그 말에 최소아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이 가까운 순간,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다. 웃다 보니 눈물까지 흘렀다.
“당신을 가장 미워했던 그때, 저는 제 인생을 버려서라도 당신을 끌고 같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싶을 정도였어요. 전 이해가 안 돼요. 진혁 씨도 유지아 씨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왜 여전히 그 사람을 선택해요? 말해 봐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해요?”
오랜 침묵 끝에 강진혁이 낮게 말했다.
“그 애 부모님이 나한테 은혜가 있어.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있었고 내가 버릴 수가 없어. 최소아, 너는 돈도 있고 미래도 있어. 하지만 지아는 나밖에 없어. 내가 걜 사랑하든, 너를 사랑하든 지금 그게 그렇게 중요해?”
말은 가시처럼 박혔다. 최소아는 목에서 올라오는 쓴맛을 뱉지도 삼키지도 못했고 심장은 완전히 찢어지는 듯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입을 다물었다.
돈이 정말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왜 자신은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걸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무렵, 머리 위가 파이며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그들은 구조되었다.
강진혁은 쓰린 눈을 뜨고 최소아를 등에 업어 한 걸음씩 위로 기어올랐다.
“최소아, 정신 차려. 내가 지금 데리고 올라갈게.”
지상에 올라오자 그는 자신이 철근에 베여 온몸이 상처투성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급차 쪽으로 걸어가던 그는 고개를 돌린 순간 사람들 속에서 울고 있는 유지아를 보았다.
“진혁 오빠!”
그 이름에 그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강진혁은 최소아를 내려놓았다.
“왜 저를 구급차까지 데려가지 않아요?”
“지아가 바로 거기서 보고 있어. 걱정하는 걸 보여 줄 수 없어. 그래서 여기까지만 데려온 거야.”
최소아는 비웃듯 미소를 짓고, 더는 버티지 못해 주저앉았다.
아빠, 엄마, 아이, 그리고 강진혁... 사람들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이유를 안고 살아가는데, 왜 항상 버려지는 건 자신일까?
눈을 완전히 감기 직전, 그녀는 돌아보지 않는 그의 등을 향해 아주 낮게 말했다.
“강진혁 씨 내가 당신을 놓아줄게요. 우리 이혼해요.”
눈을 뜬 뒤, 최소아는 두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비행기표를 사 테티아로 향했다. 아이의 천장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하늘을 선회하는 독수리를 바라보며 그녀는 옆에 서 있던 라마에게 물었다.
“정말 윤회가 있어요?”
“최 시주, 자연사한 이들은 모두 다음 세계로 가 현생의 인연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럼 제 자리도 하나 남겨 주세요. 제가 죽으면 아이와 함께 여기에 묻어 주세요.”
최소아는 담담히 웃었다.
아마도 이번 생은 스스로 끝내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부모도, 강진혁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얼굴조차 보지 못한 그 아이만큼은 놓기 싫었다.
자신을 사랑해줄지도 모를 세상 유일한 존재일 수도 있었다.
하버시아로 돌아왔을 때 청담만 별장 앞에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유지아가 이를 악물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최소아, 너 같은 재수 없는 년, 얼마나 더 죽여야 만족하겠어! 아버지도 네가 죽였고, 엄마도 미치게 했고, 이번에는 진혁 오빠까지 죽여야 속이 시원해?! 아주머니 시켜서 나 죽이려고 했지?! 나, 죽어서도 절대 너 용서 안 해!”
강진혁의 차가 멈춰 섰고, 그는 서둘러 내려와 유지아를 감싸 안았다.
“이미 센트럴에서 내보냈잖아. 왜 계속 몰아붙여? 왜 지아를 놔주지 않는 거야? 최소아, 내가 진짜 너를 잘못 봤어. 이혼하자는 것도 전부 거짓말이었지? 하... 내가 너 같은 악독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직도 마음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니.”
최소아는 담담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고 얼굴은 창백했으며 눈 속의 혐오와 분노는 숨길 수 없었다.
“나는 유지아 씨 건드린 적 없어요. 양미선 아주머니에게 시킨 적도 없고요.”
“네 말을 믿을 것 같아? 그날 너를 땅속에서 그냥 죽게 놔둘걸.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나지 마.”
강진혁은 유지아를 안아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좋아요, 다시는 안 나타날게요.”
최소아는 그의 등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그들이 떠나자 그녀는 자신의 소지품을 모두 정리했다. 주식, 집, 차...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현금으로 바꿨다.
변호사 사무실로 향한 그녀는 강진혁이 남겨둔 이혼 협의서를 찾아 서명했고 곧장 공항으로 갔다.
어디로 갈지조차 정하지 않은 채 아무 나라나 선택해 한빛항공의 마지막 표를 샀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기내에서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현재 항만을 벗어나 더 넓은 하늘로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