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여씨 가문의 세 사람이 언제 떠났는지 강우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묘지에 홀로 오래 앉아 있다가 박여금에게서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지금 어디서 죽치고 있는 거야? 빨리 돌아와. 네 남편이 미쳤어…온서진이랑 결혼하겠다고 난리야.”
강우희는 더 이상 대꾸할 기력조차 없었다. 묘비 앞에서 뺨을 맞은 일로 이미 모든 결과가 결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돌아가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박여금의 재촉에 강우희는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켰다.
묘지 근처에서는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첫 번째 험악한 분위기는 지나가고 난 뒤였다.
박여금의 눈물자국은 거의 마른 상태였고 전화 속 분노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바다는 계속해서 강씨 성을 이어가고 여민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면서도 강서 그룹을 책임질 것이다. 다만 온서진 뱃속의 둘째는 나중에 반드시 여씨 성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쌍방 협의 후의 균형이었다.
강지석과 박여금은 겨우 동의했고 바다와 온서진은 당연히 기뻐했다.
강우희가 집으로 들어서자 두 번째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나는 둘째가 태어난 후 다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는 걸 원치 않아. 강우희, 너도 이혼에 협조해야 해.”
여민수는 차갑게 표정 지으며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강우희는 그 얇은 종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목구멍에서 낮은 신음을 흘렸다.
온서진은 흥분한 기색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고 강지석과 박여금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사실상 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우희는 처량하게 웃으며 천천히 서류를 손에 쥐었다.
여민수의 눈에 스쳤던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갑자기 화를 내며 온몸에서 냉기를 뿜어내듯 강우희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너도 이혼에 동의했으니 우리 가문의 가보를 탐내진 않겠지.”
강우희의 손목에는 옥팔찌가 하나 있었다. 예전에 여민수가 직접 그녀에게 채워준 것으로 그가 고백에 성공한 날 두 사람의 정표가 되었던 것이었다.
강우희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눈이 시큰거려 견딜 수 없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마치 사랑을 조금씩 벗겨내는 듯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팔찌를 잡고 서서히 빼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구에게 탓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믿었던 것도 직접 그를 밀어냈던 것도 먼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도 모두 그녀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모든 일은 자업자득이었다.
“응. 좋아, 좋아.”
여민수는 차갑게 웃으며 갑자기 이혼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렇게 쉽게 네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할 수는 없지.”
모두가 깜짝 놀랐지만 여민수는 더 이상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성큼성큼 떠나버렸다. 엉망진창인 상황만 남았다.
강우희는 피로를 느꼈다. 머리는 엉망이 되어 더 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방금 일어난 모든 일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녀는 강씨 가문을 위해 자신의 결혼을 희생했지만 지금은 강씨 가문조차 그녀를 버리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집도 필요 없었다.
짐을 반쯤 싸고 있을 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온서진이 들어왔고 배는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머리를 매만지며 손목의 옥팔찌를 드러냈다.
“여민수 씨가 서류를 찢은 건 너 때문에 화가 나서야. 하지만 이미 여민수 씨는 나를 인정했어. 이 여씨 가문의 가보 내 손에 얼마나 잘 어울려?”
강우희는 더 이상 그녀와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이간질하러 오지 마세요. 곧 강씨 가문을 떠날 거고 여기서도 나갈 거예요. 다시는 방해하지 않을 테니 이제 만족하나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서진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배를 감싸 쥐고 울부짖었다.
“내 아이!”
거의 동시에 여민수가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
“온서진 씨!”
그는 급히 그녀를 안아 들고 재빨리 뛰어나갔고 강우희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순식간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강우희는 무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렸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박여금이 몰래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네가 속상해하고 오빠를 위해 억울해하는 건 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어. 바다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해.”
강우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채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여민수가 급히 돌아왔다.
그의 눈 밑은 거무스름했고 턱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자라 있었지만 눈빛은 차가운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서진이 한 말이 사실이었어. 네 마음속에는 정말 오빠밖에 없었던 거야. 그렇다면 이 결혼은 더 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겠군.”
새로운 이혼 서류가 건네졌다. 이번에는 여민수가 이미 이름까지 적어 놓았다.
강우희는 필사적으로 속마음을 감추려는 박여금의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다시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녀는 속으로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혼을 바란다면 떠나기 전에 그들의 뜻대로 해주고 동시에 그동안 강씨 가문에서 받은 은혜를 갚는 셈 치자고 마음먹었다.
‘여민수 씨와 온서진 씨가 오래오래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고 자녀를 많이 낳아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를 빌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