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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수능이 끝난 뒤 도성시에는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지진이 닥쳤다. 진서인은 죽을힘을 다해 부모님과 오빠를 폐허 속에서 끌어냈지만, 정작 자신은 무너진 서까래에 척추를 강하게 부딪쳐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부모님은 그 일로 극심한 죄책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눈물로 지새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 진기준이 손에 친자 확인서를 들고는 한 여자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엄마, 두 분 친딸은 여기 진명화예요.” 진기준의 차분한 목소리는 진서인의 귀에 청천벽력 같았다. “서인아, 너랑 명화는 그때 병원에서 바뀌었었어.” 순간 부모님의 눈에 짙게 어려 있던 죄책감이 눈에 띄게 옅어지면서 대신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내 딸! 불쌍한 내 딸!” 이정희는 진명화를 껴안은 채 크게 울었다. 진문철도 눈가가 붉어진 채 진명화의 등을 토닥이며 연달아 말했다. “돌아왔으니 됐다. 돌아오기만 하면 돼!”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서인아, 명화가 막 돌아와서 아직 모든 게 낯설 텐데 베란다 있는 네 방을 명화에게 양보해.” “서인아, 이 주얼리 세트는 명화한테 첫 만남 선물로 주자. 너는 이미 액세서리가 많잖아.” “서인아, 제국대의 특별 전형 입학 자격은 명화한테 더 필요하니까 네가 양보해. 너는 아빠가 다른 학교를 알아봐 줄게.” 그때부터 진서인의 세상은 어두워졌다. 그나마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약혼자 육정훈이 늘 다정하게 곁을 지켜주어 다행이었다. “서인아,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육정훈은 진서인의 어두운 삶 속에서 유일한 빛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명화가 울면서 진서인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고양이를 일부러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했다. “저 아니에요!” 진서인은 창백한 얼굴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부모님과 오빠는 진서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진명화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과 친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겹치면서 그들은 금세 이성을 잃었다. “이 독한 것! 우리가 몇 년을 키워줬는데 명화한테 이런 짓을 해?” 이정희는 크게 분노했다. “뒤뜰 연못에 빠뜨려서 물에 빠지는 게 어떤 건지 똑같이 느껴보게 해.” 진문철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으며 진서인은 변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진서인은 휠체어에서 거칠게 끌려 내려와 늦가을의 얼어붙을 듯한 연못 속으로 그대로 내던져졌다. “살려줘요. 아빠! 엄마! 오빠! 제발요... 저 아니에요...” 진서인은 물을 먹으면서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울부짖어도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 뒤로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은 진서인의 체온과 의식을 조금씩 빼앗아 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진서인은 병원에 누워 있었다. 온몸은 마치 뜯어냈다가 다시 붙여진 것처럼 차갑고 아팠다. 진서인이 막 눈을 뜨자 문밖에서 육정훈과 진기준의 낮은 대화 소리가 들렸다. 육정훈은 분노와 안타까움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기준아, 나 더는 못 참아 지금 당장 네 부모님들께 사실을 말씀드릴 거야! 진짜 친딸은 서인인데 어떻게 가짜 때문에 서인이를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어?” 진서인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친딸 맞다고? 그런데 왜 오빠는 내가 진명화랑 바뀌었다고 한 거지?’ 진기준은 다급히 말했다. “정훈아! 안 돼! 절대로 말하면 안 돼! 명화가 친딸이라고 거짓말한 건 두 분이 더는 서인이 일로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어! 서인이가 친딸이 아니라고 생각하시고부터 부모님께서 죄책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비록 예전만큼 서인이를 챙기진 않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매일 눈물로 지내시진 않잖아! 지금 네가 모든 걸 밝히면 내가 지금까지 한 노력이 다 물거품이 돼! 부모님께서도 다시 서인이가 우리 때문에 다리를 잃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실 거야! 난 두 번 다시 그런 날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진기준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정훈아, 네가 서인이를 많이 좋아해서 안쓰러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서인이는 내 친여동생이야! 나라고 마음이 안 아픈 줄 알아? 그래도 부모님을 위해 이 연극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진서인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건 연못에 빠졌을 때보다 더 차가운 한기로 다가왔다. ‘연극이라고? 이 모든 게 오빠가 꾸민 연극이었다니.’ 부모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면 진서인에 대한 사랑을 거둬도 된다는 걸까? 진서인의 것이던 것들을 다른 여자에게 모두 넘겨줘도 된다는 걸까? 진서인이 모함을 당했을 때조차 아무도 진실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서인이 3년 동안 휠체어에 갇혀 견뎌낸 고통과 그녀가 잃어버린 인생은 뭐가 되는 걸까? 그 모든 게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까? 거대한 허무함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진서인은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문밖에서 한참을 침묵하던 육정훈이 마침내 아주 낮고 힘겨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 육정훈도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기준과 함께 진서인을 속여왔던 것이다. 진서인이 오해받고 상처받는 것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진기준은 그제야 안도하며 말했다. “가자. 명화 보러 가야지. 여기 오래 있으면 부모님께서 눈치채셔. 정훈아, 서인이를 보는 게 가슴 아프면 너도 같이 가자.” 두 사람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진서인은 병실 침대에 누워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시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휠체어에 앉게 된 순간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세계는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그때 담당 의사가 병원 기록지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진서인 씨, 깨어나셨네요? 가족분들은 안 계세요?” 의사는 텅 빈 병실을 둘러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진서인은 눈물을 간신히 삼키며 물었다. “의사 선생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의사는 차트를 확인하고는 진지한 얼굴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위암 말기입니다. 서둘러 가족분들과 치료 계획을 상의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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