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박씨 저택.
박진우와 박강훈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양아현은 이미 음식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성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가 자초지종을 듣게 된 양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진우 씨, 유리 씨가 3년 전 일 때문에 날 원망해서 돌아오지 않으려는 걸까? 감옥까지 다녀온 사람이 박씨 가문을 떠나면 어디로 갈 수 있다고 그래?”
“신경 쓰지 마.”
박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성유리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눈에 띄게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성격도 많이 변한 것 같았고 눈빛에 어둠이 가득했다.
‘감옥에서 엄청 고생했나? 그럴 리가 없어.’
박진우는 곧바로 부인했다. 양아현에게서 들었는데 여자 교도소 사람들 모두 친절하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성유리를 잘 부탁한다고 미리 손을 써놓기도 했었다.
하여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고 잘못을 저질러 3년 동안 갇혀 지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양아현이 걱정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유리 씨가 돌아오지 않으면 할아버지께서 물어보실 텐데 어떡해? 할아버지께서 특별히 진우 씨한테 유리 씨가 출소하니까 데리러 가라고 하셨잖아.”
과거 성유리가 박철용을 구한 적이 있었기에 박철용은 그녀를 매우 아꼈다. 심지어 박진우에게 성유리와 결혼하라고 강요했고 엄청난 예물을 주기도 했다.
나중에 성유리가 감옥에 갔는데도 박철용은 그녀만을 며느리로 인정했다.
박진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걱정하지 마. 오래 못 버틸 거야. 나한테 화난 건 그렇다 쳐도 설마 강훈이한테까지 화를 내겠어? 며칠 후면 강훈이 졸업식인데 그때 꼭 올 거야.”
박강훈은 세 학년을 월반했다. 하여 올해 고작 아홉 살인데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성유리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자랑스러운 순간을 놓칠 리가 있겠는가.
박강훈은 입을 삐죽 내밀면서 양아현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렸다.
“근데 난 아현 이모가 졸업식에 와줬으면 좋겠어요.”
양아현이 박강훈의 코를 톡톡 치면서 다정하게 웃었다.
“그래. 강훈이가 엄마를 달래서 데려오면 이모가 졸업식에 같이 가줄게. 감옥에 다녀온 엄마가 그런 자리에 참석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녀의 말에 박강훈이 멈칫했다.
‘달래서 데려오라고? 나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야?’
박강훈의 얼굴에 망설이는 기색이 스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엄마가 감옥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면 아무도 나랑 놀아주지 않을 거야.’
박진우도 딱히 반대하지 않자 박강훈이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양아현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면서 아쉬워했다.
“아쉽네. 전부 유리 씨를 위해서 준비한 음식인데. 다 못 먹으면 버리게 생겼어.”
하지만 이틀이 지나도 성유리는 박진우에게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다. 이혼하겠다는 말이 진심인 듯 부자의 일에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결국 박진우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성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 번호가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이 흘러나왔다.
박진우는 잠깐 멍해졌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성유리가 감옥에서 3년을 보냈기에 예전에 사용했던 번호는 진작 없어졌고 카톡 계정마저 삭제되었다.
이젠 그녀와 연락할 방법이 정말 없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과 짜증이 밀려왔다.
박진우는 바로 비서에게 지시했다.
“성유리 현재 주소와 연락처 알아봐. 출소했으니 우리 박씨 가문의 체면을 깎게 해선 안 돼.”
...
출소 후 이틀 동안 성유리는 윈드 타워를 다시 꾸몄다.
박진우와 이혼하면 재산의 절반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스스로 먹고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여 예전에 취미로 했던 옥석 조각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3년 동안 아무도 찾지 않은 윈드 타워는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대청소를 하다가 윈드 타워에 있던 호택사자상이 사라진 걸 발견하고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3년 전에 양아현 씨가 안티팬 때문에 다친 적이 있었거든요. 양아현 씨가 호택사자상을 좋아한다고 박 대표님과 도련님이 양아현 씨의 저택으로 옮겨놓았어요. 평안을 기원한다면서요.”
성유리는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호택사자상은 원래 박진우와 박강훈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조각한 것이었는데 꽤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하지만 박진우는 촌스럽다면서 다시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것을 양아현에게 선물했다니...
‘내 마음을 짓밟은 것도 모자라 여자한테 잘 보이겠다고 가져다 바쳐?’
성유리는 전화를 끊고 망설임 없이 112에 신고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신고하려고요. 집에 있던 물건을 누가 훔쳐 갔어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진술서 작성을 마쳤을 때 성유리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경찰이 떠나고 나서야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약을 탔다.
그런데 의사가 그녀의 몸에 있는 상처를 보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몸에 오래된 상처가 너무 많고 낫기도 전에 또 상처가 생긴 것 같네요. 주먹질, 발길질, 몽둥이질 상처뿐만이 아니라... 바늘 자국까지 있고 몸이 너무 허약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괜찮아요.”
성유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사의 호의를 거절했다. 한의학에 능통한 그녀라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감옥에 있던 사람들은 잔인하고 매정했다. 교도관들이 알아차릴까 봐 대부분 은밀한 곳만 때렸다.
만약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의술을 몰랐더라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힘든 감옥에서도 죽지 않았는데 나와서 죽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 상처들이 남편과 열 달 동안 품었던 자식이 준 것이라는 생각에 성유리는 마음이 씁쓸했다.
이제 다시는 박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의사가 약을 갈아주는 동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박강훈이 성유리를 발견했다. 박강훈이 박진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입술을 적셨다.
“아빠, 엄마가 왜 병원에 있어요? 어디 아파요?”
박진우의 시선이 그제야 성유리에게 향했다. 그 순간 얼굴을 잔뜩 찌푸렸고 눈에도 혐오감이 스쳐 지나갔다.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밀당이야? 아프긴 개뿔. 나한테 보여주려고 일부러 쇼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