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그 말에 성유리는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송아림을 바라보았다.
토끼 인형에 푹 빠진 아이를 한 번 보던 그녀는 그제야 박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른 용건 있어서 보자고 했어요.”
입꼬리를 올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은 박지훈은 냅킨으로 입을 닦아낸 뒤 성유리를 마주 보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도 기품있어 성유리는 좀처럼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말해봐.”
“오늘 대표님을 뵙자고 한 건 밥보다 제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예요.”
지금 성유리의 머릿속에는 낮에 박진우가 했던 말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가볍다라는 그 단어가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어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제 앞으로 별장 하나를 남겨주셨거든요. 그런데 그 소유권이 지금 큰어머니한테 있어요. 그걸 돌려받고 싶은데 제 능력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성유리는 말을 잇는 대신 고개를 들어 박지훈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쓰고 난 휴지를 뼈가 가득 담긴 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박지훈이 여전히 말없이 테이블만 두드리자 성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연히 맨입으로 도와달라고는 안 해요. 조건 제시하시면 들어드릴게요.”
“유리 씨 비즈니스 잘하네. 병원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거래하려고?”
“비즈니스는 잘 모르지만 인간관계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지 알 거든요.”
“유리 씨가 나한테 뭘 줄 수 있지?”
박지훈은 성유리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그가 냉소를 흘리자 그 숨결이 성유리의 코끝까지 전해졌다.
그의 말을 한참 되짚어보던 성유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아버지의 치료를 도맡을게요.”
“참 대단한 대가네.”
성유리에게서 시선을 거둔 박지훈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검은색 반지가 불빛에 비쳐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아니라 ‘대표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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