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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퇴원한 뒤, 허민아는 곧바로 이민 절차를 밟았다. 신청서를 접수한 직원은 약 15일 정도면 승인이 날 거라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틀간 쉬고 난 뒤 배찬율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정리했다.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 창고를 가득 채운 그의 선물들, 커플 컵과 잠옷까지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불태웠다. 마침 배찬율이 돌아와 재만 남은 바닥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뭘 태운 거야?” “별거 아니야. 쓸모없는 잡동사니.” 배찬율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선물을 내밀며 며칠 전보다 훨씬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아팠어?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해졌어? 살도 많이 빠졌고.” 갑작스러운 그의 관심에 허민아는 잠시 멍해졌지만 선물을 받지 않았다. “괜찮아.”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배찬율도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지난번 떠날 때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걸 떠올린 그는 변명을 덧붙였다. “며칠 전 회사에 일이 좀 있어서 급했어. 그래서 말이 좀 거칠었어. 네가 예전에 이 가방 좋아했잖아? 비서 시켜서 사 왔어. 화 풀어. 응?” 허민아는 가방을 한 번 바라봤다. 출시됐을 때 분명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고 결국 그녀가 직접 샀다. 두 달이나 지난 지금, 이미 질릴 만큼 사용한 후에야 그가 사다 준 것이다. “이렇게 오래 지나서 왜 이제 생각난 거야?” 배찬율은 그녀가 기뻐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자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네가 좋아하잖아. 그러면 당연히 사줘야지. 예전에도 내가 자주 사줬잖아...” 말을 하다 보니 배찬율은 자신이 이미 아주 오래도록 허민아에게 선물을 사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언제, 무엇을 선물했는지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배찬율은 잠시 멍해졌고, 얼굴에는 복잡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허민아는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번뜩였다가 사라진 죄책감을 조용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휴대폰 화면에 낯선 친구 추가 알림이 떴다. 익숙한 프로필 사진을 보는 순간 허민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곧바로 수락했고 상대는 즉시 주소 하나를 보내왔다. [시간 있어요? 한 번 만나죠. 제가 꽤 많은 걸 갖고 있는데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김예은이었다. 허민아는 그 메시지를 보낸 목적을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끝내기 전에 직접 그녀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로 궁금했다. 김예은에게 도대체 어떤 점이 있기에 배찬율이 그렇게까지 잊지 못하는지. 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김예은은 돌려 말하지도 않고 곧바로 여러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대부분은 배찬율이 결혼식을 난입해 신부를 데리고 나가는 현장 직찍 사진이었고, 나머지는 최근 이틀 동안 둘이 함께 데이트하고 쇼핑하며 찍은 사진들이었다. 김예은은 허민아가 이것들을 보면 충격과 고통에 휩싸일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득의양양하게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한 것은 잔잔한 물결처럼 아무 변화 없는 허민아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점점 초조해져 결국 참지 못하고 자랑하듯 말을 쏟아냈다. “3년이나 지났는데도 찬율 오빠는 아직 저를 못 잊었어요. 허민아 씨, 허민아 씨가 오빠의 몸 껍데기만 얻으면 뭐 해요? 오빠의 마음은 영원히 제 건데. 제가 한마디만 하면 오빠는 망설임도 없이 결혼식에 뛰어들어 왔잖아요. 참, 저한테 별장도 한 채 사줬고 매주 저를 보러 오겠다고 약속했어요. 심지어 자기 비서까지 저한테 남겨서 제 일상을 돌보게 했어요. 남자란 말이죠.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영원히 제일 좋은 법이죠. 그러니까 허민아 씨는 절대 저를 이길 수 없어요!”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영원히 최고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배찬율은 이미 그 사실을 몸소 증명해 주었으니 말이다. 허민아는 쥐가 날 정도로 꽉 움켜쥐었던 손가락을 천천히 풀며 쉰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래서요? 김예은 씨가 정말 그 사람의 마음속 유일한 사람이라면 3년 전엔 왜 예은 씨를 포기하고 저랑 결혼한 거죠?” 김예은은 그 말에 막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한참 후에야 반박할 말을 찾아냈다. “인정해요. 그땐 두 사람처럼 소꿉친구로 쌓아온 감정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허민아 씨가 오빠를 몰아붙이며 저랑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한 그 순간부터 허민아 씨는 이미 완패한 거예요!” 김예은의 말을 들은 허민아는 자신과 배찬율이 왜 오늘에 이르렀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랬다. 배찬율에게 선택을 강요한 그 순간부터 그녀는 밝고 깨끗한 첫사랑에서 옷깃에 달라붙은 밥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고 김예은은 그의 가슴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유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허민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속에서 뒤엉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김예은 씨의 말이 맞아요. 저는 졌어요. 하지만 김예은 씨, 하나만 기억해요. 남의 가정에 끼어든 제3자도 결코 이길 수는 없다는 걸.” 그 말을 남기고 허민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고 나가려 했다. 김예은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녀가 자신을 도발한다고만 생각하며 분노에 차서 뒤따라 나와 허민아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그래서 아직도 놓지 못하고 매달리겠다고요? 오빠가 다시 돌아갈 거로 생각해요? 헛된 꿈 꾸지 말아요. 지금 당장 오빠의 마음속에서 누가 제일 중요한지 직접 증명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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