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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왜냐고? 그때는 강준호가 강도현보다 돈이 훨씬 더 많았거든.” 배서연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난 돈만 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지금은 도현이가 강한 그룹을 전부 물려받았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붙잡아둬야지.” 배서연의 말은 점점 더 노골적이었다. “나랑 6년 만날 때 도현이가 얼마나 미쳐 있었는지 알아? 나 말고는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어. 네가 아무리 유혹해도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그거야. 도현이는 늘 나만 바라봤어. 넌 끼어들 틈도 없는 사람이라고.” 배서연은 비웃듯 턱을 들었다. “지난번 경매장에서 내가 갖고 싶다고 했던 그 비취 팔찌 기억나지? 상상할 수도 없는 가격이었는데, 도현이는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나한테 사 줬어. 너한테도 그런 적 있었어?” 한 마디 한 마디 모두가 무뎌 보이지만 심장을 깊게 갈라놓는 칼날 같았다. 윤서하는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결국 서연 씨는... 저를 이렇게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거예요?” 배서연은 태연했다. “너한테서 도현이를 되찾아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조금 있다가 도현이가 수술실에서 나오면 우리 내기하자. 마취에서 깨고 제일 먼저 부를 이름이 누구일지.” 말도 안 되는 말처럼 들렸지만 윤서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놓지 못했다. ‘혹시... 혹시 강도현에게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을지도 몰라. 적어도 내가 불 속에서 살아서 나왔는지, 그 정도는 걱정해 주지 않을까? 7년을 함께했는데... 사람이라면 그 정도 정은 있는 거 아닐까?’ 하지만 한 시간 뒤, 수술실 문이 열리고 들것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마취가 덜 풀린 강도현의 입술이 가장 먼저 내뱉은 이름은 역시 윤서하가 바라던 이름이 아니었다. “서연아.” 윤서하는 그 자리에 굳은 채로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고 배서연은 윤서하를 향해 일부러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어때? 이번에도 내가 이겼지?” 윤서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서연이 강도현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윤서하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흩어졌다. 그 뒤로 며칠 동안 윤서하와 강도현은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하지만 윤서하가 매일 본 것은, 강도현의 곁에 붙어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배서연이었다. 손 닿을 위치에서 밥을 떠주고, 약을 챙겨주고, 장난스레 웃어 주고, 그 모습은 누가 봐도 부부였다. 윤서하는 강도현에게 다가설 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윤서하가 퇴원할 수 있는 날, 강도현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영양식과 작은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 “사흘 뒤면 네 생일이잖아. 상자 안에 열쇠가 들어 있어. 옷장 안쪽 서랍에 선물 넣어뒀어. 열쇠로 열어 보면 돼.” 사흘 뒤면 윤서하가 정말로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윤서하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열쇠를 받았다. “고마워요.” 가방을 집어 들고 퇴원 서류를 챙기려다, 안에 있던 이민 서류 한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강도현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게 뭐야? 너... 이민 가려고 했어?” 윤서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류를 빼앗아 들었다. “친구 서류예요. 제가 대신 가져가려고 했어요.” 강도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윤서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네 생일 날에 나도 퇴원해. 그날 집에 있을게. 네 생일은... 내가 챙겨줄 테니까. 서하야, 그날은 집에서 날 기다려.” 윤서하는 가슴 한복판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뭔가 입을 열려고 했던 바로 그 순간, 복도에서 배서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아, 내가 직접 끓인 닭백숙 가져왔어.” 그러자 강도현은 말을 끊고 바로 병실을 나갔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다정한 말투가 병실 안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윤서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묵묵히 옷을 챙겨 입고 병실을 나섰다. 그러나 문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그녀를 휘어잡아 복도 끝 화장실로 끌고 갔다. 문이 잠기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자, 배서연이 비웃음을 띤 얼굴로 서 있었다. “왜 도현이가 네 병실에서 나오는 거야? 설마 내기에서 진 주제에, 또 도현이를 유혹하려는 건 아니지?” 윤서하는 참지 못하고 노려보았다. “전 그런 적 없어요. 떠난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은 지킬 거예요.” “그럼 도현이 근처에 얼쩡거리지도 마.” 배서연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넌 이미 내기에서 졌으니 깔끔하게 물러나.” 윤서하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끝이 배서연의 다리를 스쳤다. 별거 아닌데 배서연은 얼굴이 확 돌변했다. “당장 저년 머리 잡아서 변기에 처박아.” 순식간에 양옆에서 손이 뻗어 와 윤서하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얼굴이 차가운 변기 물에 그대로 처박혔다. 거칠게 물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윤서하는 숨이 막히는 압박감에 휩싸여 온몸이 떨렸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머리를 끌어올려 잠시 숨을 돌리게 하는가 싶더니 다시 퍽하는 소리와 함께 윤서하의 머리를 변기 안으로 눌러 넣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윤서하는 이를 악물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모두 열아홉 번이었다. 배서연은 윤서하의 머리를 변기 속에 열아홉 번이나 처박았다. 열아홉 번의 유혹이 모두 실패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열아홉 번의 모욕이 윤서하를 짓눌렀다. 그때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 하는 거야?” 강도현이었다. 그러자 배서연은 곧바로 윤서하를 부축해 일으켰고 젖은 옷을 닦아 주는 척하며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서하의 귀걸이가 변기에 떨어졌대. 내가 말렸는데도 계속 찾겠다고 하더라고. 내 말이 맞지?” 이미 배서연한테 매수된 부하 직원들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줄행랑쳤다. 윤서하는 숨을 몰아쉬며 배서연을 밀쳐내고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 변기에 처박은 건 너야. 날 열아홉 번이나 처박았다고! 바로 너...” 배서연은 깜짝 놀란 척 강도현 뒤로 숨었다. “도현아, 그런 게 아니야. 제발... 날 믿어줘.” 윤서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마지막 기대를 담아 강도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한마디였다. “귀걸이는 다시 사면 돼. 변기 물은 더러우니 인제 그만 찾아.” 강도현은 그것만 말하고는 배서연의 팔을 감싸안았다. 배서연은 윤서하를 향해 보란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둘은 다정한 연인처럼 화장실을 나갔다. 윤서하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온몸이 젖어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무엇보다 더 차갑게 굳어버린 건 마음이었다. ‘강도현은 끝까지 배서연만 믿는구나.’ 열아홉 번의 모욕감과 더러워진 온몸, 변기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하지만 그 모든 치욕보다 더 아픈 건, 결국 강도현의 한마디였다. 윤서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한 치의 가치도 없는 씁쓸한 웃음이었다. 윤서하가 눈을 감고 두 주먹을 꽉 움켜쥐자 치욕과 분노가 뒤섞인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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