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1화 혼인을 강요하다

“한 번 더 묻겠다. 혼인할 것이냐, 말 것이냐!” 싸늘한 사내의 목소리가 하지연의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천천히 눈을 뜨는 순간, 하지연의 시야에 들어온 건 사내의 준수하지만 험악한 얼굴이었다. 이내 몸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눈앞의 사람에게 목을 졸리게 되니 심장이 터질 것처럼 괴로웠다. 하지연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녀는 상사에게 배신당해 총을 다섯 발 맞고 죽었는데 말이다. 머릿속으로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억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연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뺨을 아주 세게 맞았고 그 바람에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했다. 입안에서 번지는 비릿한 피 맛에 하지연은 피를 뱉어냈다. 등도 화끈거리면서 아팠다. 고개를 든 하지연의 눈동자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머릿속에 남은 기억을 통해 하지연은 몸의 원래 주인이 곤장을 맞다가 죽었고 그러한 이유로 자신이 이 몸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답하거라. 덕양왕과 혼인할 것이냐, 말 것이냐?” 분노 어린 꾸짖음과 함께 또 한 번 따귀가 날아들었다. 그녀를 때린 사람은 바로 태자 독고수형이었다. 녹색 옷을 입은 이가 달려들어 독고수형을 말리며 울면서 호소했다. “태자 전하, 언니를 이제 그만 놔주세요. 아버지께서 그날 밤 술에 취하여 실수로 저를 덕양왕 마마와 혼인시킬 거라고 약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 대신 언니를 억지로 덕양왕 마마와 혼인시키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옵니다. 그리고 언니도 그동안 줄곧 전하를 연모하였사옵니다. 이렇게 언니를 몰아붙이는 것은 언니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사옵니다.” 하지연의 이복동생 하혜원이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말했다. 독고수형은 그 모습을 보더니 마음이 아팠는지 하지연을 놓아주고 하혜원을 부축했다. 하지연은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죽음의 기운을 몰아냈다. 하지연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고,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다시금 중심을 잃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연은 자신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과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상황을 바로 파악했다. 이 몸의 주인이었던 사람의 아버지는 정승 하종수였다. 그는 한 달 전 덕양왕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술김에 덕양왕과 하혜원의 혼인을 승낙했다. 하종수는 술이 깬 뒤에 후회막급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아이가 바로 첩실인 영용부인이 낳은 딸 하혜원인데, 그런 그녀를 난폭하다고 소문난 덕양왕과 혼인시키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혜원도 덕양왕과 혼인하고 싶지 않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하혜원은 이미 태자와 정을 통하였고 장차 태자비가 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종수는 정실부인 소생의 하지연을 하혜원 대신 시집보내려고 했고 그 일로 하지연을 핍박했다. 하지연은 정실부인 소생이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정승 댁에서 마땅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고 하지연의 어머니 원씨는 심지어 하종수에게 미움을 받았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은 당연히 하혜원 대신 덕양왕과 혼인하고 싶지 않아 했고, 그 일로 하혜원은 독고수형에게 울면서 호소했다. 조금 전 마당에서 있었던 일들이 하지연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독고수형은 정승 댁 사람들과 협력하여 하지연을 협박하고 고문까지 했다. 하지연은 심지어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기 전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며 간절히 애원했는지까지 전부 듣게 되었다. 하지연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경멸의 눈길로 하지연을 바라보던 독고수형이 그녀에게 발길질을 했다. “너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 날 연모한단 말이냐? 퉤, 너 같은 것은 첩으로 삼는 것도 싫다.” 하지연은 이미 고문을 당한 상태인데 독고수형이 가차 없이 발길질하는 바람에 피를 토하게 되었다. 두 주먹을 꽉 쥔 하지연의 두 눈동자에서 분노가 점점 더 강렬해졌다. 하지연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심하게 다친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혜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미안합니다. 예전에 태자 전하에게 마음을 품지 않겠다고 언니와 약조했었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군요. 태자 전하를 향한 그리움을 억누를수록 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언니의 경고도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혜원은 가련한 척했지만 하지연은 하혜원이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독고수형은 버럭 화를 냈다. “감히 나와 혜원이 사이를 가로막으려는 것이냐? 나는 너처럼 지독한 여인은 처음 본다.” 하혜원은 서둘러 독고수형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전하, 언니를 탓하지 말아 주세요. 따지고 보면 동생인 제가 포기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제 잘못이옵니다. 제가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여...” 독고수형이 말했다. “혜원아, 그만 얘기하거라. 너는 마음이 너무 약해서 탈이다. 그러니까 언니라는 작자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하혜원은 비참한 모습의 하지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깐이지만 하혜원의 눈동자에 악랄함이 스쳐 지나갔으나 그녀는 이내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제발 저와 태자 전하 사이를 막지 말아 주세요. 이 은혜는 평생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연은 헛숨을 들이키면서 싸늘한 얼굴로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두 사람을 짜증스레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시대 사람이 아닌 현대사회 특공대 군의관으로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라 앞뒤가 다르고 악의를 품고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하는 역겨운 자를 혐오했다. 하지연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에 따르면 덕양왕은 다리에 문제가 있는 데다가 성정이 난폭했다. 그리고 비록 그에게는 정실부인이 없지만 저택에 이미 열 명 넘는 첩을 두고 있었다. 게다가 첩들 중 반 이상이 불구가 되었다. 그 점만 보아도 덕양왕의 첩들이 그동안 어떤 나날을 보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몸의 원래 주인도 그 점을 알고 있어서 덕양왕과 혼인하지 않으려고 한 걸 것이다. 하지연은 고통을 견디며 온 힘을 다해 말을 내뱉었다. “너를 위해 내 평생의 행복을 바치라는 말이냐? 정말 뻔뻔하구나!” 독고수형은 그 말을 듣더니 분노가 치밀어올라 의자에 앉아 있는 하혜원의 어머니 영용부인을 바라보았다. “어서 매질하지 않고 뭐 하는 것이오?” 영용부인은 줄곧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초조했다. 만약 하지연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딸 하혜원이 악질로 유명한 덕양왕과 혼인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녀는 오늘 태자가 직접 찾아와서 압박을 가하여 하지연이 동의할 줄 알았다. 그러나 몇 번이나 형벌을 가했음에도 하지연은 절대 승낙하려고 하지 않았다. 태자가 명령을 내리자 영용부인은 더 이상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호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봐라, 때리거라. 죽을 만큼 때려서라도 동의하게 하거라.” 영용부인이 명령을 내리자 두 명의 하인이 달려들어 하지연을 거칠게 제압했다. 이내 하지연의 등 위로 곤장이 내려앉았고 살이 찢기면서 등이 피범벅이 되었다. 8년 동안 특공대로 일해 온 하지연은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로 본인이 견딜 필요가 없는 치욕과 폭력을 감내했다. 입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왔고, 등 뒤로 내려앉는 곤장들은 온몸의 뼈를 부술 듯했다. 영용부인과 독고수형은 하지연이 이토록 끈질길 줄은 몰랐다. 영용부인은 분노가 치밀어올라 고상하던 척은 관두고 빠르게 하지연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 올리며 악랄하게 말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너는 죽게 될 것이다.” 하지연은 영용부인의 얼굴을 향해 입안 가득 고여있던 피를 뱉었다. 영용부인은 역정을 내며 하지연의 머리를 땅에 처박은 뒤 그녀의 머리를 발로 짓밟았다. “그래. 어디 계속 버텨보거라.” 독고수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하오? 동의하지 않는다면 정승의 계획대로 하지연의 어머니 원씨에게 아주 더러운 죄목을 씌워 집안에서 내쫓으면 그만이지 않소? 물론 원씨가 집안에서 내쫓긴 뒤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오.” 하지연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동시에 괴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감정이 아니라 몸의 원래 주인의 머리와 마음속에 남은 감정이었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죽기 전 유일하게 걱정했던 사람이 바로 어머니 원취옥이었다.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 하지연은 위엄 있는 목소리를 들었다. “내일이면 혼례를 치르는 날이다. 더 때려서 정신을 잃게 만든 뒤 가마에 실어 보내거라. 덕양왕은 내 딸을 왕비로 맞기를 바란 것뿐이니 불구가 되든 얼굴이 망가지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연은 그 목소리를 머릿속에 깊이 새겨두었다. 그동안 특공대로서 일한 경험에 따르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아버지 하종수의 목소리일 것이다. 호랑이도 제 새끼 귀여워할 줄 안다는데 하종수는 짐승만도 못했다. 또 한 번 곤장이 하지연의 등 위로 내려앉았고 하지연은 끝내 기절했다.
이전 챕터
1/100다음 챕터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