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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무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귓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뜬 하지연의 눈앞에 퍼렇게 멍이 들어서 부은 동그란 얼굴이 보였다. 하지연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소희니?” 그 사람은 바로 이 몸의 원래 주인의 시녀 소희였다. “아씨, 제가 지켜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소희는 구슬프게 울었다. 하지연은 온몸이 화끈거리며 아팠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힘겹게 조금 전 영용부인이 앉아 있던 의자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연은 두 다리와 등을 심하게 다친 상태라 의자에 앉으면 마치 수많은 침들이 꽂힌 방석 위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오히려 지독한 통증 덕분에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머릿속에서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귀신이 되어서도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것은 이 몸의 원래 주인의 목소리였다. 하지연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중지에 차가운 금속이 닿자 하지연은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고개를 숙여서 그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바로 탈혼환이었다. 탈혼환까지 그녀를 따라 이 시대로 온 듯했다. 탈혼환은 하지연이 특공대 소속일 때 과학자들이 연구해 낸 무기였다. 탈혼환 안에는 칩이 들어 있어 스스로 햇빛과 공기 중의 전기를 흡수하여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혼례는 언제냐?” 하지연은 탈혼환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천천히 손으로 굴리면서 서글프게 울고 있는 소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희는 울면서 대답했다. “아씨, 당장 내일입니다.” ‘내일?’ 하지연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조금 전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마치 영화처럼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매번 반복될 때마다 분노가 차곡차곡 쌓이며 이 몸의 원래 주인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의지도 강해졌다. “어머니는?” 하지연이 살짝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소희는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마님께서는 영용부인께서 아씨를 잡았을 때 대부인의 처소로 찾아가 소란을 부렸고, 화가 나신 대부인께서는 마님을 지하 옥방에 가두었습니다.” ‘대부인?’ 하지연의 머릿속에 노쇠하지만 위엄 있는 얼굴이 떠올랐다. 대부인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족조차 외면할 수 있는 매정한 사람이었다. “대부인과 아버지께 알리거라. 가마에 타겠지만 대신 우리 어머니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연은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희는 그 말을 듣더니 더욱 슬프게 울었다. 소희는 하지연에게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다. 혼인하지 않는다면 죽는 길밖에 없었다. 소희가 떠난 지 반 시진이 되지 않아 원씨가 돌아왔다. 원씨는 들것에 실려 돌아왔다. 대부인은 사람들을 매우 엄격히 다스리는 사람이었기에 큰 소란을 벌인 원씨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원씨를 심하게 매질했다. 영용부인이 원씨를 직접 데리고 왔다. 그녀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하지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결국 동의하게 될 텐데 왜 지금까지 고집을 부린 것이냐? 일찌감치 승낙했더라면 덜 고생했을 텐데 말이다. 천박한 것.” 하지연은 오만한 표정의 영용부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지연의 머릿속에 영용부인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다. 영용부인 진영용은 한때 과부였다가 정승과 혼인하였고 그 뒤로 쌍둥이 남매 하혜원과 하우림을 낳았다. 그 뒤로 그녀는 하종수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진영용은 첩에 불과했지만 하종수는 그녀를 영용부인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하였고, 그 탓에 정실부인 원취옥은 안주인 자리를 빼앗기다시피 했다. 영용부인은 조금 전 하지연에게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연은 음산한 눈빛으로 영용부인을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들며 온 힘을 다해 그녀의 뺨을 힘껏 때렸다. 영용부인은 흠칫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때린 하지연을 바라보았다. “죽고 싶은 게냐?” 영용부인의 음험한 눈동자에서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하지연을 찢어발길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연은 차갑게 말했다. “이 따귀는 이자입니다. 당신이 하지연에게 빚진 것들, 제가 하나하나 다 받아낼 것입니다.” “네가 아주 단단히 미친 모양이구나. 여봐라...” 영용부인이 사람을 부르려는데 하지연이 머리에 꽂고 있던 비녀를 뽑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을 영용부인의 목에 가져다 댔다. “감히 날 죽일 수 있겠느냐?” 영용부인은 헛숨을 들이키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지연을 바라보았다. 하지연은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어디 한 번 그 귀한 목숨을 저의 천박한 목숨과 바꿔 보시겠습니까?” 영용부인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뭘 어쩌고 싶은 것이냐?” “의원을 데려와 저희 어머니를 치료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죽더라도 가마에 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말을 마친 뒤 하지연은 천천히 풀어 헤쳐진 머리를 비녀로 단정히 틀어 올렸다. 영용부인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그녀는 하지연을 혼내주고 싶었으나 오늘 하지연을 화나게 하는 건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만약 하지연이 가마에 타는 걸 거부한다면 태자비가 되려는 하혜원의 꿈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영용부인은 코웃음을 쳤다. “두고 보자꾸나!” 하지연이 정말로 덕양왕과 혼인한다면 앞으로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 같은 삶일 것이다. 영용부인은 말을 마친 뒤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영용부인은 원취옥을 위하여 의원을 데려왔다. 하지연도 의원을 통해 통증을 줄이는 약과 내상에 쓰이는 약을 받았다. 의원의 챙긴 약상자 안에는 침들이 들어있었는데 하지연은 3냥으로 그것을 샀다. 의원은 하지연의 상처를 보고는 그녀가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정도 상처라면 최소한 침상에 보름 정도 누워 있어야 했다. 정승 댁 아씨인 하지연은 의지가 상당히 굳건한 사람인 듯했다. 원씨는 의원이 떠난 뒤 정신을 차렸다. 얼굴뿐만 아니라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인 딸의 모습에 원씨는 물밀듯이 밀려오는 슬픔을 느꼈다. “모두 나 때문이다.” 하지연은 원씨의 손을 잡는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절대 쉽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원씨의 눈동자에서 보이는 애정과 서글픔에 한 번도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귓가에서 같은 말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억울해. 너무 원통해. 나를 대신하여 복수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자에게 보답할 텐데...” 그것은 이 몸의 원래 주인의 한 맺힌 울음이었다. 그것이 하지연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하지연은 원씨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원씨는 흠칫하며 하지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회?” 하지연은 잔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희 모녀를 해친 사람들을 전부 지옥에 보낼 기회지요.” 하지연은 특공대 소속 군의관이었으나 가끔 현장에 투입될 때가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하지연은 손에 피를 많이 묻혔다. 그리고 그녀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극악무도한 자들이었다. 원씨는 천천히 앉으면서 하지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연은 조금 불안했다. 그러나 불안감은 이내 흥분이 되었다. 곧 복수할 수 있다는 흥분으로 말이다. 하지연을 순조롭게 가마에 태우기 위해 그날 밤 하종수가 그녀를 찾아왔다. 하지연은 약을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순간 바로 눈을 번쩍 떴다. “얌전히 내 말에 따른다면 네 어머니는 내가 잘 보살피도록 하겠다. 그러나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친 뒤 그는 파혼장 하나를 넘기며 싸늘하게 말했다. “네가 가마에 오른다면 이 파혼장은 소각될 것이다. 반대로 가마에 오르지 않는다면 이 파혼장은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알려질 것이다.” 하종수는 원씨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몸을 돌려 떠났다. 원씨는 파혼장을 주워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보았다. 파혼장은 음탕한 그녀가 몰래 하인과 사통하였기에 그녀를 저택에서 내쫓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원씨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18년 전 뛰어난 용모의 사내가 애정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평생 그녀만을 사랑하겠다고, 영원히 그녀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당시 하종수는 끈질기게 구애하여 겨우 원씨의 마음을 얻었다. 그러나 혼인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원씨가 파혼장을 찢어버리려고 하자 하지연이 파혼장을 빼앗아 소매 안에 넣으며 원씨에게 말했다. “이 파혼장은 우리에게 아주 예리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이 무기로 어머니를 해치는 사람의 심장을 찌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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