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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싸움

황후는 덕양왕이 또 한 번 발작을 일으키는 걸 원치 않는다는 하지연의 말에 흔들렸다. 오늘 만난 하지연은 상당히 공손했고 조금 전 덕양왕이 발작했을 때도 가장 먼저 덕양왕에게 다가갔었다. 그리고 하지연이 했던 말 또한 모두 사실이었다. 사실 황후는 일찌감치 오늘 정승 댁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하지연이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으니 하지연은 상당히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침을 놓아 피를 흘리게 하라는 것도 헛소리는 아닐 것이다. 사실 하지연은 굳이 그 얘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괜히 불똥이 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지연의 상황은 이미 충분히 나빴다. 어의는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황후마마, 귀에 침을 놓아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치료 효과가 어떤지는 아직 확실치 않사옵니다. 게다가 귀와 머리에 침을 놓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일이옵니다. 혹시라도 침을 다른 혈 자리에 놓는다거나 힘을 과하게 쓴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사옵니다.” 하지연은 그 말을 듣고 입술을 달싹이더니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황후는 하지연을 바라보며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일단 덕양왕을 보살피고 있거라.” 어의가 예를 갖추며 물러났다. 그는 떠나기 전 하지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하지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는 어의를 도발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황후는 독고용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섭정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고용재는 잔을 만지작거리면서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의술에 무지하여 감히 판단을 내릴 수가 없사옵니다.” 황후는 독고용재를 바라보았다. “섭정왕께서는 견식이 넓으시지 않습니까? 궁에서 오랫동안 지낸 저보다는 많이 알고 계시겠지요.” 섭정왕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싱긋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여름날의 뜨거운 불길과도 같아 보고 있으면 굉장히 거북했다. 적어도 하지연은 그렇게 느꼈다. 하지연은 문득 섭정왕과 황후 사이가 좋은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하지연이 정녕궁에 도착하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섭정왕도 계속 여유로워 보였지만 스스로 원한 것이 아니라 억지로 그곳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연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청난 기세를 가진 섭정왕이 무엇 때문에 조연처럼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일까? 황후도 섭정왕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앙금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둘이 오늘 일로 함께 하지연을 심문하는 것일까? 하지연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가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섭정왕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황후마마께서 직접 결정하시지요. 저는 단지 폐하의 부탁을 받고 흠이의 혼인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니 말이옵니다. 다른 일은 제가 결정할 수 없사옵니다.” 말을 마친 뒤 그는 예를 갖추고 자리를 떴다. 황후는 갑자기 화가 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하지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만약 황후와 섭정왕이 이곳에서 싸우게 된다면 하지연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황가의 내분을 외부인이 알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섭정왕은 걸음을 멈추었다. 늘씬한 그는 늠름한 자태로 그곳에 서 있었다. 정녕궁 안으로 쏟아진 햇빛이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그의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섭정왕의 눈빛에서 언짢음이 언뜻 보였다. 황후는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며 음험하면서도 경멸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대비마마께서는 과거 입궁하여 태후마마를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당시 태후마마께 섭정왕을 위해 좋은 혼처를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다지요. 그리하여 태후마마께서는 제게 섭정왕의 혼처를 한번 알아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섭정왕비의 자리에 아주 잘 어울리는 여인이 나타났군요.” “황후마마께서는 제 혼사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독고용재가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황후는 차갑게 웃었다. “섭정왕께서는 그 여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독고용재는 음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황후마마, 그럴 시간에 태자 전하와 덕양왕의 혼사에 신경을 쓰는 건 어떻사옵니까? 이 아이는 덕양왕과 혼인할 자격이 없는 듯한데 말이옵니다.” 황후는 차갑게 웃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덕양왕과 어울리지 않아도 됩니다. 섭정왕과 어울리면 되지요. 지금 바로 태후마마께 하 정승의 딸 하지연과 섭정왕을 혼인시키는 것은 어떠냐고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태후마마께서는 아주 기뻐하시겠지요. 태후마마께서는 하지연의 어머니인 원씨를 굉장히 좋아하셨으니 말입니다. 재녀인 원씨가 낳은 딸도 틀림없이 원씨처럼 총명하고 단아할 것이고 훌륭한 섭정왕부의 안주인으로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연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녕궁 안의 온도도 몇도 낮아진 듯했다. 하지연은 상처에서 다시 통증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덕양왕의 여인이 될 자격은 없다면서 섭정왕과 혼인시키겠다니. 게다가 어의의 진찰 결과에 따르면 하지연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섭정왕비가 된다는 말인가? 하지연은 오늘 입궁하여 겪을 일들을 너무 얕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승 댁이 늑대 소굴이라면 궁 안은 호랑이 소굴이었다. 고개를 숙인 하지연은 아무도 바라보지 못했다. 혹시라도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마음속의 당황함과 혼란스러움을 전부 들킬 것만 같았다. 하지연은 독고용재와 황후가 대치 중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 살벌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정녕궁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하지연은 숨소리조차 일부러 작게 냈고 혹시라도 눈을 깜빡일 때 소리가 날까 봐 바짝 긴장했다. 그녀의 이마 위에서 땀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졌다. 심지어 등도 식은땀에 푹 젖어서 서늘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하지연은 발소리와 함께 그림자 하나가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았다.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하지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서둘러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연이 제일 처음 본 것은 한없이 싸늘한 눈동자였다. 그러나 섭정왕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섭정왕은 매우 자애로운 어투로 말했다. “좋구나. 나 또한 네가 내 왕비가 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하지연은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덕양왕이 미친개라면 섭정왕은 호랑이였다. 섭정왕이라면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하지연을 전부 삼켜버릴지도 몰랐다. 하지연은 섭정왕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섭정왕은 그녀가 눈에 차지 않았고 그녀와 혼인할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태후와 황후에게는 그의 혼사를 결정할 권리가 있었다. 황후가 홧김에 하지연과 섭정왕을 혼인시키겠다고 한 이유는 섭정왕이 화를 내며 펄쩍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섭정왕이 황후의 뜻대로 움직일 리가 없었고 그 이유로 섭정왕이 하지연을 바라보며 웃은 것이다. 하지만 사실 섭정왕의 눈동자에 혐오와 증오가 가득했다. 하지연은 순간 소용돌이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황후와 섭정왕의 싸움이라는 소용돌이에 말이다. 하지연은 지금의 정세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중병을 앓고 있는 황제가 독고용재를 섭정왕의 자리에 앉혀 자신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게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일찌감치 예상해야 했다. 황제는 오래전 태자를 정했지만 태자가 아닌 자신의 아우 독고용재가 천하를 다스리게 했다. 게다가 독고용재를 섭정왕으로 만들었으니 황후로서는 섭정왕이 아니꼬울 것이다. 두 사람의 싸움에 하지연이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연은 황후가 차갑게 웃으며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씀은 동의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지금 바로 태후마마께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독고용재는 광기 어린 얼굴로 웃었다. “그리하시지요. 저도 이제는 혼인할 때가 되었으니 말이옵니다. 덕양왕과는 혼인하지 않으려고 한 아이가 저와 혼인하게 되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지요.” 섭정왕은 말을 마친 뒤 하지연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떠났다. 하지연은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떠나기 전 자신을 바라보던 섭정왕의 눈빛에는 너무 많은 알 수 없는 위협이 가득했다. 섭정왕은 하지연과 혼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은 황후가 그녀를 죽이려 하지 않아도 섭정왕이 그녀에게 손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황후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정녕궁 안으로 바람이 불어와 하지연은 온몸이 서늘해졌다. 땀은 이미 말랐고 상처에 땀이 스며들어 은근히 아팠다. 눈앞의 모든 것이 또 한 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하지연은 본인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황후는 매서운 눈빛을 감추고 자애롭게 웃어 보였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이 많았다. 이만 출궁하거라. 너와 덕양왕의 혼사는 취소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추후 태후마마께 아뢰어 너와 섭정왕을 혼인시킬 것이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너희 부모에게도 알리면 아니 된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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