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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임가현은 재벌가 자제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추녀’로 통했다. 두꺼운 앞머리는 얼굴의 절반을 가렸고 두툼한 검은 뿔테 안경이 눈을 눌러 덮고 있었다. 얼굴에는 늘 칙칙한 파운데이션을 두텁게 발라 생기를 지웠고 입술에는 짙은 색 립스틱을 덧발라 윤곽마저 흐릿하게 만들었다. 길을 걸어도 누구 하나 시선을 두 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모든 것이 전부 고의라는 사실을.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임가현의 어머니, 박지숙은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는 미인이다. 임동석은 그런 그녀를 집요하게 쫓아다니다가 끝내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그러나 결혼 후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수시로 외도를 일삼았다. 박지숙은 수없이 상처받은 끝에 무너졌고 결국 절망 속에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박지숙은 숨이 가쁘게 차오르던 마지막 순간 열 살이던 임가현의 손을 꼭 붙잡았다. 어린 나이임에도 숨길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는 힘겹게 입술을 움직였다. “가현아... 엄마 말 꼭 기억해. 너무 예쁘면... 남자한테 속아... 그래서 항상 결말이 좋지 않아. 넌 스스로를 지켜야 해... 이 얼굴... 꼭 숨기고 살아...” 임가현은 그 말을 잊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못생기게 꾸몄다. 앞머리는 점점 더 두꺼워졌고 안경은 일부러 무거운 테를 골랐다. 옷 역시 언제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색만 입었다. 그렇게 그녀는 웃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으며 가능한 한 존재감을 지우는 법을 배워 갔다. 그런 딸을 두고도 임동석은 수없이 많은 맞선을 주선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았다. 임가현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남자들은 하나같이 표정을 굳히거나 어색한 핑계를 대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그 모든 반응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상처받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건 어머니와의 약속이었으니까. ... 백 번째 맞선 날. 임가현은 카페 한쪽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가현 씨...”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생각조차 없는 불쾌감이 묻어 있었다. “소개받을 땐 이런 모습이라고는 안 들었는데요.” 임가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얼굴로... 어떻게 맞선을 나올 생각을 하셨어요? 누가 당신을 아내로 원하겠습니까?” 임가현은 커피잔을 꽉 움켜쥐었다. 손끝에 힘이 들어갔지만 끝내 고개는 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남자는 자신의 커피잔을 집어 들더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그대로 끼얹었다. “화장 지워지니까 더 잘 어울리네요.” 차가운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두껍게 발랐던 파운데이션이 번지며 그 아래 숨겨져 있던 희고 고운 피부가 드러났다. 임가현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옆에서 길고 단정한 손 하나가 불쑥 뻗어 나와 남자의 손목을 붙잡더니 거침없이 비틀었다. 쾅! “아아아악!”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사과하세요.” 임가현이 고개를 돌리자 맞춤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체격이 반듯했으며 깊은 눈매와 오뚝한 콧날, 단단히 다문 입술까지... 전신에서 냉정하면서도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는 여전히 상대 남자의 손목을 붙잡은 채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누구야?!” 남자가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사과하세요.” 짧은 한마디였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거부를 허락하지 않는 압박이 담겨 있었다. 결국 남자는 그 기세에 눌려 덜덜 떨며 임가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허겁지겁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갔다. 그제야 정장을 입은 남자는 손을 놓고 재킷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임가현에게 건넸다. “닦으세요.” 임가현은 멍하니 있다가 손수건을 받아서 들었다. “당신은 이런 모욕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바로 신고하세요.”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등을 돌려 카페를 나섰다. 임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곧은 뒷모습이 카페 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심장이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뛰었다. 그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조사를 시작했다. [한주혁. 한권 그룹의 최연소 후계자. 스물여섯.] 가업을 맡은 지 3년 만에 그룹을 안정시켰고 수단은 냉정했으며 능력은 탁월했다. 재벌가에서 손꼽히는 완벽한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사생활이 깨끗했다. 단 한 번의 스캔들도 없었다. 임가현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그가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 “임가현 씨.” 그는 임씨 가문 저택의 거실에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와 혼인하시죠.” 임가현은 몇 번의 심호흡 끝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저인가요? 저는 예쁘지도 않은데요.” 한주혁은 그녀를 바라본 채 담담하게 답했다. “외모는 제 판단 기준이 아닙니다. 가현 씨가 제 반려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적합’ 전혀 낭만적인 단어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말이 가슴을 뛰게 했다. 박지숙은 너무 예쁘면 남자에게 속기 쉽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래서 임가현은 일부러 못생기게 꾸미고 살아왔다. 그런 그녀에게 한주혁은 결혼을 제안했다. 그래서 임가현은 자신이 올바른 사람을 만났다고 굳게 믿었다. ... 한주혁은 결혼 후 3년 동안 임가현에게 너무 잘해 주었다. 그는 그녀의 외모를 단 한 번도 문제 삼지 않았다. 누군가 뒤에서 수군거릴 때면 그녀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가현아, 너는 충분히 예뻐.” 그리고 한주혁은 그녀가 디자인을 좋아하자 직접 투자해 작업실을 열어 주었다. 또 그녀의 위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는 늘 피해야 할 음식들을 기억했다. 접대 자리가 늦게 끝나는 날에도 반드시 따뜻한 죽 한 그릇을 사 들고 돌아왔다. 생일에는 아무리 바빠도 모든 일정을 미루고 하루 종일 임가현과 함께했다. 한 번은 교통사고가 났다. 차가 도랑으로 굴러떨어졌고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주혁은 망설임 없이 달려와 맨손으로 찌그러진 문을 뜯어내듯 열어 그녀를 끌어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미처 열 미터도 떨어지기 전에 차량이 폭발했다. 그는 곧바로 몸으로 그녀를 감싸안았다. 불길이 그의 등을 스쳤고 그 자리에 심각한 화상 자국이 남았다. ... 임가현이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한주혁이었다. “제 남편은요?! 남편은 괜찮아요?!” “한주혁 씨는 등 쪽 화상이 심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지금은 옆 병실에 계십니다.” 임가현은 곧바로 링거 바늘을 뽑고 비틀거리며 옆 병실로 달려갔다. 문을 열려던 순간 안에서 한주혁의 어머니 황미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혁아! 너 일부러 못생긴 여자를 데려와서 우리 한씨 가문을 웃음거리로 만든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 여자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거니?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짓을 할 생각이야!” 임가현의 손이 문고리 위에서 멈췄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주혁의 차분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제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알고 계시잖아요.” “결국 이 모든 게 백서린 때문이라는 거지!” 황미경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주혁아, 넌 우리 가문의 가장 뛰어난 후계자야! 백서린은 절대 우리 집에 들일 수 없어. 아무리 사랑해도 안 되는 사람이야. 가현이를 이용해 우리를 자극해 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임가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는 잠시 문틈 너머를 바라보다가 복도 벽을 짚은 채 천천히 자신의 병실로 걸음을 옮겼다. ‘방금... 뭐라고...? 백서린은 또 누구지?’ 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검은 그림자처럼 집어삼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임가현은 휴대폰을 꺼내 사설 탐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주혁과 백서린의 모든 관계를 조사해 주세요. 가능한 한 자세히요.] 답을 기다리는 매 순간이 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었다. 머릿속에서는 황미경의 ‘일부러 못생긴 여자와 결혼했다’는 말과 한주혁의 담담한 “원하는 게 있다”는 한마디가 반복해서 맴돌았다. 며칠 후, 마침내 자료가 도착했다. 임가현은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열었다. 그 안에는 두툼한 서류 묶음과 함께 수많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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