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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부끄럼이 없는 강이영

만년필 끝에서 먹물이 번져 문서 위에 커다란 얼룩을 만들었고 유정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초롱초롱한 강이영의 눈과 마주쳤다. “우리 아직 혼인신고 안 했어.” 유정한의 목소리는 다소 긴장되었다. “그래서 같이 잘 수 없어.” 강이영은 곧바로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하지만 우린 분명 이미...” 그녀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버렸고 ‘부부의 의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뭐?” 유정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이미 같이 살고 있잖아요!” 강이영은 억지를 부리듯 유정한의 소매를 잡아 흔들었다. “진짜 얌전히 자기만 할게요. 아무것도 안 해요!” 그 말에 유정한은 우스워하며 비꼬듯 말했다. “대체 뭘 하고 싶었는데?” 강이영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혼인신고는 안 했더라고 우리는 약혼한 사이잖아요. 뭔가를 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유정한은 입꼬리를 씰룩이며 생각했다. 강이영이 구실도 참 잘 붙인다고. 이내 소매를 빼내며 식탁을 손가락 마디로 똑똑 두드렸다. “네 방으로 돌아가서 자!” “여보오오...” “안 돼. 얼른 가서 자.” 다른 일은 몰라도 이 일만큼은 유정한이 절대 그녀의 뜻대로 둘 수는 없어 서재의 문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지금, 당장, 얼른 방으로 돌아가!” 강이영은 입술을 삐죽이며 한 걸음마다 뒤돌아보며 나갔다. 슬리퍼 소리가 유난히도 무겁게 울렸다. 문을 닫을 때 일부러 작은 틈을 남겨두고 그 사이로 불쌍하게 유정한을 한 번 더 바라보기도 했다. 유정한은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억지로 서류를 보며 계속 검토했다. 그러나 한참을 봐도 글은 한 글자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쯧. 글렀군.' 그는 짜증스럽게 서류를 덮고 아예 방으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나오는데 갑자기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문밖에서는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이 안 와요. 무서워요...” 유정한이 문을 열자 강이영이 베개를 안고 복도에 서 있었다. 따스한 복도 불빛이 강이영의 얇은 잠옷을 비추었고 조금 옆으로 내려간 옷깃 사이로 쇄골 한쪽이 드러났으며 매끈한 종아리는 강이영이 긴장한 듯 서로 스치고 있었다. “여보...” 강이영은 고개를 들어 유정한을 보자마자 순간 숨이 멎었다. 남자의 커다란 몸은 욕실 불빛을 등지고 서 있었고 물방울이 머리카락 끝에서 똑똑 떨어져 단단한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균형 잡힌 복은 위에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이 맺혀 조명 아래서 빛나고 있었고 허리에는 느슨하게 묶인 수건이 걸쳐져 유난히도 섹시하게 보였다. 강이영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시선이 저도 모르게 자석에 끌리듯 그의 완벽한 몸으로 갔다. 그녀는 물방울이 그의 복근을 타고 흘러내려 수건 가장자리로 스며드는 것까지 전부 보았다. “구경 다 했어?” 낮고 차가운 목소리에 강이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정한은 어두워진 얼굴로 욕실 문 뒤에 걸려 있던 가운을 홱 집어 입고 허리끈이 끊어버릴 듯 꽉 조였다. “여보, 몸이 엄청 좋네요...” 강이영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얼굴은 익어버린 사과처럼 붉게 물들었지만 여전히 슬쩍 가운 틈새로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유정한은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끈 솟았다. “강이영, 넌 부끄럼이라고는 없어?”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데요?” 강이영은 도리어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내가 내 남편을 보겠다는 건데, 왜 부끄러워해야 하냐고요. 남의 남편을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유정한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도 몰랐다. “네 방으로 돌아가.” “싫어요, 여보. 저 무섭단 말이에요.” 강이영은 진심으로 무서웠다. 여하간에 그녀에게 여기는 여전히 낯선 곳이었으니까. 혼자 방에 있으면 전혀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눈만 감으면 빨리 뛰는 심장 소리가 들려 무서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보, 절대 방해하지 않을게요. 저는 그냥 소파에서 자면 돼요.” “제발요, 네?” 강이영은 두 손을 모아 애원하듯 말했고 조막만 한 얼굴에는 간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눈가는 토끼처럼 붉어졌는데 아까 정말 울었는지 아니면 연기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남편과 같은 방에 있기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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