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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서경대학교에서 올해 가장 화제를 일으킨 사건은 미술학과 조현희의 첫 경험 영상이 캠퍼스 단톡방에 유출된 일이었다. 영상은 5성급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발가벗은 채 키가 한 뼘 더 큰 남자에게 통유리창 앞에 눌린 조현희는 규칙적인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거사가 끝난 후 남자는 조현희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착하네...” 짧은 한마디였지만 단톡방에는 폭탄이 투하된 것처럼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목소리... 설마 성준빈 아니야?] [조현희, 정말 대단하네. 우리 학교 이사까지 꼬시다니... 그래서 전에 조현희를 괴롭히던 학생들이 조용했구나.] [조현희를 순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속셈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누가 불륜녀 딸이 아니랄까 봐!] 이 소식이 퍼지고 있을 때 조현희는 기숙사에서 성준빈에게 줄 목도리를 뜨고 있었다. 룸메이트가 영상 소리를 최대로 키운 후 비웃는 얼굴로 휴대폰을 조현희에게 돌려 보이며 일부러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조현희, 신음 소리 내는 게 아주 능숙한데? 평소에 많이 연습했나 봐?” 주변에서 터지는 웃음소리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조현희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반쯤 뜬 목도리가 손에서 미끄러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비틀거리며 성준빈의 사무실로 달려가 영상이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막 출입구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조롱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빈 형, 조현희 체면 정말 하나도 안 봐주는 거야? 일부러 조현희 얼굴을 선명하게 찍어서 변명할 기회조차 안 주게 만들고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조현희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피마저 굳을 듯한 차가운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다 조현희 탓이지. 준빈 형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건드렸으니 당연히 복수를 당할 수밖에... 자업자득이야. 우리 준빈 형만 고생했지. 조현희 엄마가 불륜녀라는 소문을 퍼뜨릴 사람을 찾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구세주인 척하며 조현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처리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기를 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준빈 형, 언제쯤 조현희에게 진실을 말할 생각이야? 자기가 그렇게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사실 본인의 미래 형부라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당장 울면서 기절할 걸? 하하...” 소파에 앉아 있는 성준빈은 한가로운 자세로 담배를 끼고 있는 손을 재떨이 가장자리에서 탁탁 두드렸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성준빈이 아무 말이 없자 서둘러 한마디 물었다. “마음이 아파서 그래? 조현희가 온갖 수단을 다해 조수민을 꼬셔서 2년 동안이나 해외로 추방시켰어. 조수민은 그곳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매일 추위에 떨었는데... 그러니 절대 조현희를 가만히 놔둘 순 없지!” 조수민이라는 이름에 비로소 반응을 보인 성준빈은 담배를 끄고 담담하게 말했다. “수민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그날은 조현희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념일이기도 하니 내가 서프라이즈를 선사해 줘야지. 수민이에게 진 빚 모두 갚게 해야지.” 조현희는 순간 숨이 멎을 듯했다. 연기 너머로 성준빈의 차가운 얼굴을 본 순간 가슴이 쩍 하고 갈라지는 듯한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알고 보니 엄마를 헐뜯는 소문들도 모두 성준빈이 퍼뜨린 것이었다. 성준빈이 옆에서 지켜주는 척한 건 복수를 위해서일 뿐이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조현희의 배 다른 언니 조수민이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몸을 돌려 허겁지겁 도망친 조현희는 몇 걸음도 가기도 전에 몇 명의 여자에게 길이 막혔다. “어이, 이거 영상의 여주인공 아니야?” “방금 사무실에서 나오는 것 같던데, 또 얼씨구나 하고 찾아갔던 거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조현희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지만 그 몇 사람이 밀고 당기며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 성준빈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누가 감히 내 앞에서 현희를 건드려! 죽고 싶어 환장했어?” 성준빈은 어느새 사무실에서 나와 당당하게 조현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여자들은 성준빈을 보자마자 당황한 얼굴로 흩어져 달아났다. 조현희 곁으로 온 성준빈은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를 정리해 준 뒤 허리를 살짝 굽혀 눈을 마주쳤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조현희의 볼을 가볍게 문질렀다. “내가 말했잖아, 또 다른 사람이 너를 괴롭히면 내 이름을 대라고.” 익숙한 담배 냄새가 코를 스친 순간 조현희는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눈앞의 성준빈과 기억 속 그녀를 보호해 주던 모습이 겹쳐 오랜 꿈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자살로 세상을 떠난 후 아빠는 첫사랑과 다시 사랑을 싹틔웠다. 그 후부터 조현희는 고아와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 후 학교에서는 조현희의 엄마가 불륜녀라는 소문이 미친 듯이 퍼졌고 심지어 조수민이야말로 조씨 가문 정실부인의 딸이라고 떠벌렸다. 그러다 보니 ‘불륜녀의 딸’인 조현희는 왕따의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성준빈이 나타나 힘든 상황에 처한 조현희를 구해줬다. 학교 이사 신분으로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조현희의 따뜻한 보호막이 되어 주었다. 어제는 성준빈의 생일이었기에 두 사람은 술기운을 빌려 관계를 가졌다. 평소의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을 완전히 벗어던진 남자는 강압적으로 아무런 가림막도 없는 전면 유리창에 조현희를 눌렀다. 그러고는 너무 긴장해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조현희를 감상했다. 성준빈의 여자가 되었을 때 조현희는 오랫동안 집을 못 찾아 헤매던 새가 마침내 둥지를 찾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둥지 아래에 이미 계획된 속셈들이 가득하다는 걸 전혀 몰랐다. 잠시 멍해진 조현희는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어느새 성준빈에게 이끌려 건물을 나와 그의 차량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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