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신도현의 심장이 철렁했다. 그가 급히 몸을 돌렸을 때, 조하린은 이미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정신을 잃은 뒤였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달려가 안아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
귓가를 울리는 소란 속에서 조하린이 고통스럽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의사에게 신신당부하는 신도현의 모습이 보였다.
“제 아내는 임신 4개월 차 임산부입니다. 약 쓰실 때 주의해주세요.”
처치실로 옮겨진 후, 간호사가 옷을 들추고는 납작한 배를 보며 의아한 탄성을 흘렸다.
“4개월?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전혀 임신한 배 같지 않은데!”
그녀가 의아해하며 재차 확인하려 돌아서는 순간, 조하린이 고통을 참으며 그녀를 불렀다.
“선생님, 아이는 유산됐어요. 이 사실은 비밀로 해주세요. 남편에겐 제가 직접 말하고 싶어서요.”
이유는 몰랐지만 유산이 부부에게 좋은 일일 리 없었기에, 간호사는 그녀의 뜻을 존중했다.
마취 없이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는 동안, 조하린은 거의 실신할 뻔했다.
상처에서 치솟는 작열감이 신경을 찢었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1분 1초가 영원 같은 고통이었다.
드레싱이 끝나고, 조하린은 병실로 옮겨졌다.
신도현은 침대 곁을 지키며 끊임없이 사과했다.
“하린아, 이렇게 심하게 데었는데 왜 나를 부르지 않았어.”
조하린은 이를 너무 꽉 깨문 탓에 턱이 시큰했고 다리는 불타는 것 같았다.
온몸의 체온이 오르는 기분 속에서 그녀는 겨우 한 마디를 쥐어짰다.
“당신이 너무 빨리 갔으니까요.”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신도현의 눈에 죄책감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자신의 손을 조하린이 꽉 쥔 주먹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손등을 파고들어 피가 흘렀다.
피가 방울방울 맺히는 것을 보며 그녀의 의식은 점점 더 흐릿해졌고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깊은 밤이었다.
조하린이 몽롱하게 눈을 뜨자 강지유의 뒷모습이 보였다.
“너도 데었잖아. 지금 가서 치료받아. 하린이는 내가 보고 있을게.”
“안돼. 깼을 때 내가 없으면 불안해할 거야. 치료는 내일 받으면 돼.”
강지유의 목소리가 단숨에 몇 톤은 높아졌다.
“당장 가라니까! 신도현, 네 몸 가지고 장난치지 마!”
그 말에 신도현의 굳어 있던 미간이 순식간에 풀렸다.
그는 강지유의 손을 확 잡아챘다.
“지유야, 더는 부정하지 마. 네 마음속엔 항상 내가 있었어, 맞지? 그렇다고만 하면, 나 다 버리고 너한테 갈게. 우리 다시 시작하자.”
강지유도 실언했음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빼냈다.
그녀의 당황한 표정을 본 신도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다그치지 않을게. 네가 인정할 때까지 기다릴 시간은 많으니까. 네 말대로 지금 치료받고 올게.”
그는 말을 마치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
지난 3년간 조하린의 기억 속 신도현은 언제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지배자였다.
그녀가 아무리 화를 내고 장난을 쳐도 그는 늘 아이를 달래듯 여유로웠다.
언제나 이성적이고 침착하고 냉정했다. 마치 가면을 쓰고 진짜 얼굴은 절대 보여주지 않는 사람처럼.
그녀는 그게 그의 천성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역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남자였다.
그는 강지유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분노하고 그녀의 작은 관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사랑하는 이의 말에 무조건 따랐다.
조하린은 그런 신도현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넋을 놓고 바라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강지유와 눈이 마주친 후였다.
그녀의 눈에 스친 당혹감을 눈치챈 조하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모, 도현 씨는요?”
방금 전 대화를 못 들은 듯한 모습에 강지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처 치료하러 갔어. 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나한테 말해.”
살을 태우는 듯한 고통은 여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꾹 참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모도 가서 쉬세요.”
강지유는 가지 않고 물 한 잔을 따라 건넸다.
몇 마디 더 걱정스러운 말을 건넨 후, 그녀가 조하린에게 물었다.
“하린아, 어제 쓰러지기 전에... 뭐 들은 거 있니?”
물컵을 들고 있던 조하린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고는 자신을 떠보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아뇨,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강지유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그 말들을 잊으라는 자기 자신을 향한 주문이기도 했다.
어차피, 그녀는 곧 두 사람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