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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5년간 식물인간 상태였던 송해인이 깨어났다. 남편 한은찬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해인아, 내게 넌 이제 아무런 가치도 없어. 그냥 이렇게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마.” ‘개 같은 자식!' 송해인은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손을 꽉 움켜쥐었다. 12살 때 한은찬을 알게 되었고 20살에 그와 결혼한 송해인은 22살에 출산을 했지만 의외의 사고로 두 아이를 지키는 대신 본인은 식물인간이 되었다. 의사는 송해인이 기본적인 신체 기능만 있을 뿐 감각은 없다고 진단했다. 다시 말해, 숨만 쉬는 인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송해인은 들을 수도 있었고 주변의 모든 것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저 깨어나지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의외로 한은찬의 진짜 모습을 똑똑히 보게 해주었다. 간호사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일러주었다. “한은찬 씨, 오늘 면회 시간 끝났습니다.” 한은찬은 우아하게 간호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떠나기 전, 그는 관례대로 몸을 숙여 송해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애틋하게 말했다. “해인아, 빨리 깨어나... 평생 너를 기다릴 거야, 영원히 사랑해.” 송해인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데 식물인간인 자신에게만 선보이다니 정말 아까운 재능이다. 하지만 한은찬에게는 여전히 관객이 있었다. 문밖에 있는 두 간호사가 그의 뒷모습을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한 간호사가 감탄했다. “한은찬 씨 정말 최고의 남편이야. 5년 동안 매주 식물인간 아내를 보러 오잖아.” “한은찬 씨는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재산도 수천억이야. 이런 최상급 남자에게 달려드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도 한은찬 씨는 5년 동안 스캔들 하나 없었어... 정말 대단해.” 그러자 다른 한 간호사가 입을 삐죽이며 질투 섞인 어조로 말했다. “송해인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 이런 최고의 남편을 다 만나고!” ‘최고의 남편?’ 송해인은 조용히 비웃었다. 자신의 업무 능력을 이용해 회사에 자리 잡고 그녀의 출산 가치까지 다 써버렸으며 마지막엔 평생 식물인간으로 살기를 바라는 남편... 정말 ‘좋은’ 놈이다. 송해인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5년 동안 누워있던 탓에 온몸의 근육은 이미 퇴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발을 바닥에 디디자마자 그대로 넘어졌다. 아픔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창가로 기어갔다. 아래층에는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서 있었다. 송해인은 그 차를 알아보았다. 번호판이 그녀의 생일인 이 차는 그들의 결혼기념일에 한은찬이 그녀에게 준 생일 선물이었다. 그때 송해인은 행복에 겨워 한은찬의 품에 안기며 물었다. “한은찬, 너 나 사랑하지? 그렇지?” 그때 한은찬은 웃으며 송해인에게 키스한 뒤 진지하게 말했다. “바보, 너는 내 아내야. 너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를 사랑하겠어?” 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해인아, 오늘은 우리 1주년이야. 앞으로 우리는 10년, 50년을 함께할 거야.” 원래 사랑이라는 감정은 정말 연기로도 표현할 수 있는 거였구나... 바로 그때 한은찬의 비서 임지영이 하이힐을 신고 송해인의 차에서 내렸다. 송해인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임지영은 마치 집주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한은찬에게 달려간 임지영은 가다가 무언가에 걸려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그러자 한은찬은 즉시 달려가 임지영을 받아 안았다. 그 안쓰럽고 긴장한 한은찬의 표정, 송해인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한은찬의 눈에 그녀 송해인은 무쇠보다 단단하고 전혀 아파하지도 피곤해하지도 않으며 개처럼 순종적인 존재였다. 필요할 때 한은찬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송해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곁으로 달려갔다. 대학을 졸업한 그해, 송해인은 세계 최고의 의료 연구소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한은찬의 한 마디 ‘해인아, 나를 위해 남아줘, 네가 필요해’ 때문에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멈춰 섰다. 앞날을 포기하고 그의 아내 즉 ‘한씨 가문 사모님’이 되었다. 결혼 후 송해인은 모든 것을 바쳐 한은찬을 도왔고 위장 출혈이 날 정도로 밤을 새워가며 약을 개발해내 한은찬이 스카이 그룹에서 자리 잡고 이사회 역사상 최연소 대표이사가 되도록 도왔다. 그때 한은찬은 평생 송해인에게 잘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송해인은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 천천히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은 무딘 칼로 살을 베는 것처럼 온몸이 떨리도록 아팠다. 눈을 감자 눈물이 입안으로 흘러들어 쓴맛이 느껴졌다. 송해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임지영이 수줍은 소녀처럼 한은찬의 얼굴에 키스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말이지 너무 역겨워 토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차 뒷좌석 문이 갑자기 열렸다. 송해인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낳은 쌍둥이 남매, 한진희와 한준서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 너무나 예뻤고 옥처럼 아름다운 아이들이었다. “준서야, 진희야!” 송해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흥분했다. 문을 짚은 손으로 유리창을 뚫고 귀여운 녀석들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두 아이는 임지영의 품에 안기며 임지영의 얼굴 양쪽에 키스를 했다. 옆에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웃고 있는 한은찬, 그들은 마치 네 식구처럼 보였다. 이 따뜻한 장면은 바늘처럼 송해인의 눈을 찌르는 것 같았다. 5년, 무려 5년 동안! 한은찬이 두 아이를 데리고 엄마 송해인을 보러 온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송해인은 기억이 생생했다. 한번은 임지영이 와 병실에 외부인이 없는 틈을 타 일부러 송해인 앞에서 진희더러 자기를 ‘엄마’라고 부르게 했다... 그때 송해인은 임지영 이 년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유리창에 얹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송해인은 눈빛이 더욱 단호하고 차분해졌다. 이 남자는 쓰레기처럼 버려도 되지만 두 아이는 그녀 송해인의 배 속에서 나온 핏줄이다. 그래서 반드시 되찾아올 것이다. 진희는 무언가를 느낀 듯 갑자기 송해인의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엄마와 딸은 뜻밖에도 눈이 마주쳤다. 송해인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정리하고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진희는 놀란 듯 임지영의 품에 안겼다. 송해인은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친자식이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다... “아빠, 지영 엄마, 저기 누가 있어요!” 진희가 송해인의 창문을 가리키자 진희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 한은찬은 순간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곳은 송해인의 병실이었지만 창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희야, 잘못 본 거 아니야?” 한은찬이 딸에게 확인했다. “아니에요.” 진희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제가 봤어요. 저기 누가 있었어요. 긴 머리를 한 아줌마였어요!” 눈살을 찌푸린 한은찬이 뭐라고 하려 할 때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꺼내 보니 송해인의 주치의에게서 온 전화였다. 한은찬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도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은찬 씨!” 도영준이 매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소식이에요. 사모님이 깨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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