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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검은색 벤틀리가 별장 앞에 멈춰 섰다. 한은찬은 차에서 내린 뒤 송해인을 안아 휠체어에 태운 후 그녀를 밀며 앞으로 걸어갔다. 송해인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앞의 별장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그녀와 한은찬의 신혼집이었다. 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보니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해인아, 우리 집에 도착했어.” 한은찬은 그녀의 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였다. “냄새 맡았어? 네가 나를 위해 심었던 튤립들, 지난 몇 년간 내가 아주 잘 가꿨어.” 송해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앞마당 정원에 피어 있는 튤립들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우아하게 피어 있는 그 꽃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여기 있는 꽃들 하나하나 모두 송해인이 한은찬을 위해 직접 심은 것들이었다. 그때 한은찬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튤립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송해인은 마음과 눈이 한은찬에게만 쏠려 있었다. 한은찬이 좋아한다고 해서 수백, 수천 송이의 튤립을 심으면서도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묻지 않았다. 송해인이 식물인간이 되자 임지영은 송해인을 찾아올 때마다 튤립 한 다발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웃으며 송해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언니, 아직 모르시죠? 튤립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에요. 언니가 정원에 많이 심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언니와 은찬 오빠의 신혼집에 갈 때마다 정말 행복해요.’ ... 가슴속에 증오가 치민 송해인은 손에 닿은 튤립 한 송이를 꺾어버렸다. 송해인은 한은찬을 사랑했던 지난 세월을 후회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줄 수 있었기에 잃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그렇게 짓밟힐 수는 없었다. 한은찬은 이미 그녀를 대문 앞까지 밀고 왔다. 새 신혼집인 별장은 안과 밖 모두 송해인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 문의 잠금장치 역시 그녀가 직접 선택한 지문 인식 방식이었다. 송해인이 휠체어에 앉으니 마침 문의 잠금장치와 수평을 이루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지문을 인식하려 했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한은찬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 송해인은 한은찬의 손바닥이 살짝 젖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한은찬이 말했다. “해인아, 내가 문 열게.” 송해인의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녀는 모든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한은찬은 송해인의 현관문 키의 지문까지도 삭제해버린 것이다. 송해인은 웃고 있었지만 가슴속은 쓰라리게 아팠다. 순순히 손을 거두며 한은찬이 지문을 인식해 문을 여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이 열리기 직전 여자의 가늘고 아름다운 손이 먼저 문을 열었다. 문을 연 여자는 다름 아닌 임지영이었다. 그녀는 마치 이 집의 여주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송해인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은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았다. 혹시 그녀가 식물인간으로 고통스럽게 누워있던 그 5년 동안, 임지영은 그녀의 신혼집에 살면서 그녀의 남편과 잠자리를 하고 아이마저 차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웃으며 문을 열러 나온 임지영은 문밖에 한은찬뿐만 아니라 휠체어에 송해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웃음이 얼어붙었다. 송해인이 입을 열었다. “왜 그래 은찬아? 왜 아직도 안으로 안 들어가?” 송해인은 벽에 걸린 거울을 통해 한은찬이 임지영에게 ‘쉿’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송해인은 보지 못한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은 임지영은 한은찬이 송해인을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도록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주었다. “은찬아, 준서와 진희는 어디 있어? 아이들은?” 송해인은 다소 급하게 물었다. 임신 중이었을 때 송해인은 이미 두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집에 들어온 송해인은 임지영이라는 뻔뻔한 제삼자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두 아이를 보고 싶었고 직접 안고 싶었다. 지난 5년 동안 두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겨우 깨어날 수 있었다. 한은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내일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해서 이미 잠들었어. 너는 아직 눈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당장 보지 않아도 돼.” 선글라스 아래에 있는 송해인의 눈빛이 잔뜩 어두워졌다. 하지만 지금 너무 조급하게 굴면 한은찬이 의심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송해인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갑자기 계단에서 뚜벅뚜벅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송해인은 진희와 준서가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두 아이 모두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한 명은 파란색, 한 명은 분홍색 옷을 입고 있었다. 송해인은 눈물이 날 뻔했다. “아빠.” 먼저 입을 연 준서는 시선이 휠체어에 앉아 있는 송해인에게 머물렀다. 이내 송해인의 정체를 짐작하고는 긴장한 듯 옷깃을 꼭 쥐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반면 진희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임지영을 바라봤다. “지...” 진희는 입을 열어 무언가를 부르려 했지만 임지영이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만류하는 것을 보고는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진희와 준서 맞지?” 송해인은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얼른 준서와 진희를 향해 팔을 벌렸다. “엄마야. 이리 와... 엄마 품에 와줄래?” 하지만 진희는 송해인에게 다가오기는커녕 두려운 듯 뒤로 물러섰다. 오직 준서만이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송해인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송해인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만져보았다. 마치 그녀가 진짜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진짜 엄마예요?” “응, 나야, 우리 준서와 진희의 엄마야.” 부드럽게 대답한 송해인은 준서를 품에 안고 싶었지만 아이를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준서와 진희에게 그녀는 아마도 5년 동안 잠들어 있던 낯선 여자일 뿐일 테니까... 한은찬이 말했다. “됐어, 시간이 늦었어. 준서 너는 먼저 동생을 데리고 방에 들어가 잠이나 자. 엄마 이야기는 내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차근차근 설명해줄게.” 준서는 송해인을 몇 번이고 바라본 후 몸을 돌려 계단을 올라가려 했다. 송해인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준서야, 엄마 안아줄 수 있을까?” 송해인은 거의 비굴할 정도의 자세로 애원했다. 그 순간 눈물 한 방울이 선글라스 아래로 흘러내렸다. 준서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송해인 쪽으로 돌아서려 했지만 그 순간 한은찬이 엄한 아버지의 자세로 말했다. “준서, 방에 들어가.” 그러더니 송해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서두르지 마. 두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너를 잃었어. 쟤네들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해.” 송해인의 마음속은 차갑게 식어갔다. 한은찬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 그는 송해인이 두 아이와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준서는 이미 진희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진희는 아쉬운 듯 임지영을 바라보며 몰래 손 키스를 날렸다. 이 모습을 본 송해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가슴이 쓰라리고 아팠다. 개 같은 남자는 쓰레기처럼 버려도 되지만 두 아이는 그녀 송해인의 배 속에서 나온 핏줄이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두 아이가 방으로 올라간 후, 한은찬도 송해인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원래 벽에 걸려 있던 그녀와 한은찬의 결혼사진은 이미 벽에서 떼어내 구석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상태였다. 그 사진 위에는 천 조각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송해인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송해인에 대한 한은찬의 혐오가 극에 달해 그녀의 사진조차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해인아, 너는 먼저 쉬어. 나는 서재에 가서 일 좀 처리할게.” 한은찬은 다정하게 이 말을 남긴 뒤 몸을 돌려 나갔다. “은찬아.” 송해인이 갑자기 그를 불렀다. “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알아?” 한은찬은 잠시 멈칫했다. 송해인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지만 이내 평소와 같은 태도로 말했다. “물론 알지.” 한은찬은 자신만만했다. “너는 튤립을 가장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하니까. 해인아, 너는 항상 그랬으니까.” 송해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나는 항상 그랬어.” 한은찬의 취향을 자신의 취향으로 삼고 한은찬만 바라보며... 자신은 그의 뒤에 숨었다. 정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문이 닫히자마자 송해인의 얼굴에 걸렸던 미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한은찬은 서재에 간 것이 아닐 거다. 송해인은 힘겹게 두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벽을 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다리를 움직여 창가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었다. 고작 10미터를 가는 데도 무려 5분이나 걸렸고 얼굴은 어느새 땀이 뻘뻘 흐르고 있었다. 창가에 다다르자마자 달빛 아래 임지영과 한은찬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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