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
칼을 쥐고 있던 송해인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해인아.”
한은찬은 턱을 그녀 목덜미에 기대며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밥하지 마. 벌써 음식 시켜놨어.”
“...”
송해인은 코끝을 스치는 익숙한 향기에 온몸이 굳어졌다.
그 향수는 이미 몇 번이나 맡아본 냄새였다.
그날 눈을 떴을 때도,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도.
임지영이 즐겨 뿌리는 향수였다.
송해인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허리를 감싼 손을 힐끗 바라봤다.
불과 몇 시간 전, 그 손이 다른 여자를 안고 어루만졌을 것이다.
“웁...”
송해인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한은찬을 힘껏 밀치고는 쓰레기통 앞으로 달려가 구토를 쏟아냈다.
오늘 제대로 먹은 것도 없어서 쏟아낸 건 온통 쓴 담즙뿐이었다.
한은찬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다.
남편이 안았을 뿐인데 토할 정도로 역겨워하다니.
게다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래도 한은찬은 물을 가져와 건네주며 송해인의 등을 다독였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
송해인은 걱정 가득한 그의 얼굴을 보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저렇게까지 그럴싸하게 연기할 줄이야. 아마 스스로도 진짜 좋은 남편이라 믿고 있겠지.’
그렇다면 그녀도 연기에 맞춰주면 될 일이었다.
“은찬아, 넌 괜찮아? 옷이 더러워지진 않았어?”
송해인은 불안한 기색을 담아 속삭이더니 자책했다.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다시 깨어난 뒤로는 위장이 영 좋지 않대. 토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당분간 조심하면 괜찮대. 미안해, 은찬아...”
‘그런 거였구나.’
그제야 한은찬의 눈가에서 어두운 빛이 사라졌다.
창백하게 여윈 송해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오히려 가슴이 저렸다.
“그럼 푹 쉬어야지.”
한은찬은 손을 뻗어 송해인을 안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재빠르게 몸을 비켜섰다.
“너 결벽 있잖아. 나 방금 토해서 엄청 더럽단 말이야.”
하지만 그 핑계로는 부족한 듯했다.
“내가 왜 널 더럽다고 생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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