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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결혼한 지 3년째 되는 해, 윤재우의 양여동생이 마취제 중독에 빠졌다. 권시아는 그 사실을 남편에게 숨긴 채, 그녀를 헬렌국의 중독 치료센터로 보냈다. 하지만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양여동생의 시신조차 찾지 못하게 됐고 그날 이후, 윤재우는 미쳐버렸다. 그는 건우 그룹을 무너뜨리고 권정욱과 민혜진 부부를 극한으로 몰아 자살하게 만들었으며 직접 권시아에게 약을 먹여 술집 뒷골목에 버렸다. 결국 그녀는 그곳에서 모욕당한 채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눈을 감기 직전, 윤재우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광기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너 때문에 채현이가 온전한 시신조차 남기지 못했으니, 너도 똑같이 개들한테 물어뜯겨 죽게 해줄게.” 그의 눈 속에는 양여동생 강채현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그제야 권시아는 윤재우의 마음속에 감춰져 있던 금기의 감정을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환생한 뒤였다. 권시아는 윤씨 가문의 강채현 방 앞에 서 있었다. 손은 이미 문손잡이에 닿아 있었고 머릿속은 어지러워 멍해 있었는데 그 순간, 문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재우... 오빠...” 요염한 숨소리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 생에서도 바로 이 소리를 듣고 분노에 휩싸여 문을 밀고 들어갔었다. 그리고 그때, 권시아는 강채현이 남편 윤재우를 몰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과 동시에 마취제를 몰래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차렸다. 윤재우는 늘 그 양여동생을 극진히 아꼈다. 그리고 권시아는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단지 과거 은혜를 입은 일 때문이라 믿었다. 1년 전 교통사고에서 강채현은 윤재우를 구하려다 차에 치여 내장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고 병원에서 무려 일주일 동안 사경을 헤맨 끝에 간신히 살아났다. 그때부터 윤재우는 그녀를 집에 두고 직접 돌봤다. 이런 윤재우에 대해 권시아는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강채현이 일방적으로 남편을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었다. 그래서 그 비뚤어진 감정을 끊어내기 위해 중독 사실을 숨긴 채 헬렌국으로 보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권시아는 손을 홱 거두며 몸을 떨고는 방으로 돌아와 자신을 껴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전 생에서 부모가 당한 비참한 죽음과 자신이 맞이한 끔찍한 결말이 떠오르자 온몸이 서늘하게 식어갔다. ‘이번 생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이를 악문 채 방문을 열었다. 권씨 가문으로 바로 돌아가려던 찰나, 뜻밖에도 귀가하는 윤재우와 마주쳤다. 순간, 지난 생의 기억이 떠올라 본능적으로 벽 뒤에 몸을 숨겼다. 바로 옆 거실에서 비서의 보고가 들려왔다. “대표님, 강채현 씨의 진단 보고서입니다. 국내외 최고의 외과팀을 모셔온 덕분에 회복이 매우 양호해요.” 윤재우는 보고서를 받아 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채현이가 이렇게 된 건 다 나 때문이야. 원래는 그저 여동생처럼 생각했는데... 그때 사고에서 자기 몸을 던져 나를 지켜줬지. 그 아이의 마음은 받아줄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껴줘야 해.” 비서는 안경을 고쳐 쓰며 조심스레 덧붙였다. “하지만 후유증을 남기지 않으려면 해외 재활 치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헬렌국에 있는 병원이 효과가 가장 좋다고 하는데 한 번...” “안 돼.” 윤재우는 단호히 잘라 말했다. “채현이는 나를 떠나면 무너질 거야. 그리고... 나도 채현이를 멀리 보낼 수 없어. 내가 직접 돌보지 못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거든.” 그 말을 들은 순간, 권시아의 가슴 한가운데에 날 선 칼이 박힌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입꼬리가 씩 올라가며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강채현이 그를 떠나면 미칠 거라는 말, 어쩌면 반은 맞았다. 하지만 진짜 미쳐버린 건 윤재우였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시야를 흐렸지만 기억은 오히려 또렷하게 떠올랐다. 18살이던 당시, 윤재우는 권시아를 처음 보고 한눈에 반해 열정적으로 대시를 했었다. 그녀가 치자꽃을 좋아했기에 윤재우는 수십 대의 전세기를 띄워 세계 곳곳에서 가장 신선한 치자꽃을 공수해와 세원대 운동장을 하얗게 뒤덮었다. 그녀가 무심코 ‘해진의 새우 딤섬이 먹고 싶다’고 말했을 때, 윤재우는 그날 밤 바로 비행기를 타고 해진으로 날아가 직접 줄을 서서 사 왔다. 권시아가 가장 신선하고 가장 진한 그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대회 준비로 합숙에 들어가 잠시 연락을 받지 못했을 때는 윤씨 가문의 힘을 총동원해 세원시 전체를 뒤져 권시아의 행방을 확인했고 끝내 훈련장 바깥에서 밤새 기다렸다. 그녀가 대회를 마치고 모습을 드러내자 윤재우는 미친 듯이 달려와 꼭 끌어안았다. “시아야, 제발 다시는 내 연락 무시하지 마. 너 못 찾으면 나 진짜 미쳐버릴지도 몰라.” 청혼하던 날, 그는 세원시의 모든 전광판을 통째로 빌렸다. 붉은 장미가 윤씨 가문에서 시작해 권씨 가문까지 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졌고 그가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졌다. “시아야, 넌 모를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 고집스러움이 좋고 말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그 성격이 좋고 무엇보다도 맑고 깨끗한 네 영혼이 좋아. 너로 인해 내 세상이 처음으로 색을 가졌어. 너 없는 시간은 단 한 순간도 견딜 수가 없어. 권시아, 나랑 결혼해 줄래?” 그의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대형 전광판과 드론 위에 큼지막한 문장이 떠올랐다. [권시아, 사랑해!] 그 모든 게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했지만 그로부터 고작 3년 만에, 세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권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 그때, 망설이던 비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표님, 의사 쪽에서 말하길... 치료 과정에서 강채현 씨가 통증을 줄이려 마취제를 과량 사용했다고 합니다. 혹시...” 윤재우는 손을 휘저으며 말을 끊었다. “그건 채현이가 나한테 직접 얘기했어. 원래 통증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애거든. 별일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비서는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났고 권시아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눈물 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온몸이 움츠러들며 차가운 기운이 퍼져갔다. 곧 비서는 집을 떠났고 윤재우는 여전히 거실에 남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때,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가 계단 위에서 들려왔다. “오빠?” 고개를 든 윤재우의 시야에 강채현이 들어왔다. “채현아.”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부드러웠다. “왜, 무슨 일이야?” “재우 오빠...” 강채현은 맨발로 달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몸에서는 이상한 열기가 퍼져 나왔고 윤재우의 시선이 그녀의 흐릿하게 젖은 눈빛과 맞닿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채현아...” 하지만 말끝은 그녀의 입술에 의해 막혀버렸다. 강채현이 먼저 그에게 진한 키스를 한 것이었다. 입안의 숨결을 탐하듯, 그녀의 손이 윤재우의 몸 위를 헤집으며 불을 질렀다. “오빠... 나 오빠 너무 사랑해. 그런데 그때 오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잖아. 늘 시아 언니만 봤잖아. 그때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하지만 이제는 달라. 오빠도 나한테 마음이 있잖아. 그렇지? 오빠... 우리 같이 있자. 영원히...” 더듬더듬거리며 고백이 이어질 때, 윤재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미안해, 채현아. 그때는 내가 잘못했어.” 그는 오히려 강채현을 껴안고 더 거칠게, 뜨겁게 입을 맞췄다. 두 사람의 몸이 서로 얽히며 방 안에는 숨소리가 번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권시아는 심장이 무너지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했다. 한때 자신을 향해 세상을 다 내어주던 한 남자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었지만 대신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버텼다. 이내 방 안의 소리는 잦아들고 윤재우의 구두 굽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만 희미하게 멀어져 갔다. 그렇게 권시아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찢겨진 옷, 떨어진 바지, 흩어진 속옷들로 거실과 계단은 난장판이었다 권시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만큼 힘을 주어 주먹을 쥐었다. 숨이 막힐 만큼의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때 자신만 바라보던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윤재우, 이제 당신 따위는 필요 없어.’ 그녀는 곧장 지하실로 내려가 신분증과 서류를 챙긴 뒤, 두 가지의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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