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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첫 번째로 권시아는 곧장 로펌으로 향해 변호사에게 이혼 서류를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두 번째로 그녀는 권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부모님을 설득해 가족 전체가 세원시를 떠나 해외로 이민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권정욱과 민혜진은 깜짝 놀랐다. “시아야, 사실 아빠랑 엄마도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단다. 하지만 네가 재우를 너무 사랑해서 떠나기 싫어하니 우리도 결국 포기했지.” 그러다 권정욱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시아야, 솔직히 말해봐. 재우가 너 괴롭히기라도 했니?” 환생한 권시아는 다시 본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빠. 다만... 저 재우 씨랑 이혼하기로 했어요.” 그녀의 생기가 빠져나간 듯한 얼굴을 본 권정욱은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굳은 표정으로 딸을 바라볼 뿐이었다. 민혜진은 그런 딸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시아야. 우리는 언제나 네 편이야. 오늘 바로 이민 준비 시작하자.” 이민 절차를 진행하는 데에는 약 보름이 걸릴 터였다. 권시아는 부모에게 가문의 일을 정리하라고 맡긴 뒤, 자신은 다시 윤씨 가문으로 돌아갔다. 저택의 거실은 이미 도우미들이 정리해두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말끔했다. 소파에는 윤재우와 강채현이 나란히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를 본 윤재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 어디 다녀왔어? 내가 왔을 때는 집에 없더라.” 권시아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집에 부모님 뵙고 왔어.” 그러자 윤재우가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채현이 막 퇴원했잖아. 지금 얼마나 돌봄이 필요한데 당신은 그런 애를 혼자 두고 나가면 어떡해?” 전생에서도 똑같이 들었었던 말에 권시아는 냉소를 지었다. 그때 그는 새언니로서 책임을 다하라며 강채현을 잘 돌보라고 했다. 권시아는 어리석게도 그대로 따랐고 심지어 윤재우가 슬퍼할까 봐 강채현의 마취제 남용 사실을 숨기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시신조차 남길 수 없는 죽음뿐이었다. 이번 생에서 권시아가 지켜야 할 건 오직 부모뿐이었다. “저택에 도우미는 백 명도 넘잖아. 그 정도면 한 사람쯤은 충분히 돌볼 수 있어.” 그녀가 이렇게 냉정하게 반항한 건 처음이었기에 윤재우는 순간 말을 잃었다. 가슴 안에서 통제되지 않는 짜증이 끓어올랐다. “오빠, 난 괜찮아...” 강채현이 얌전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언니는 오빠 부인인데 내가 어떻게 신세를 져...” “시아는 네 새언니야. 새언니가 아픈 시누이를 돌보는 건 당연하지 않나? 게다가 넌 나를 구하려다 다친 거잖아. 내가 책임을 져야지.” 그는 강채현의 머리카락을 다정히 쓸어 넘기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권시아를 바라봤다. “채현이는 당분간 자극적인 음식 피해야 하니까 몸에 좋은 보양식 위주로 식단을 짜.당신네 고향 지역에서는 탕 요리가 많다지? 앞으로 당신이 직접 끓여서 먹게 해줘. 도우미들은 성의가 부족해서 믿을 수 없거든. 그리고 집 안의 술은 전부 치워. 채현이가 완전히 회복하기 전에는 누구도 술 마시지 못하게.” 그의 말투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단호했다. 그 순간, 권시아의 심장이 번개에 맞은 듯 멎었다. ‘이미 잊었겠지. 위궤양을 앓던 당신을 위해 매일같이 보양탕을 끓이다가 하루는 새벽에 기절했고 깨진 그릇 조각에 손목 동맥이 끊어져 그 이후로 난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됐다는 걸.’ 그녀의 눈빛에 비웃음이 스며들었다. 뭔가 말하려던 찰나, 전화벨이 울렸고 윤재우는 휴대폰을 보고 말했다. “전화 좀 받고 올게. 당신은 준비하고 있어.” 이 말과 함께 그는 마당으로 걸어 나갔다. 권시아는 그와 강채현을 더 이상 마주 하고 싶지 않았기에 자리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돌아서려는 순간, 강채현이 그녀의 팔을 꽉 붙잡았다. “어디 가요? 오빠가 그랬잖아요. 나한테 탕 끓여줘야 한다고!” 권시아는 냉담하게 그녀를 내려다봤다. “탕이 먹고 싶으면 아주머니를 불러. 난 윤씨 가문의 안주인이지 도우미가 아니야. 그리고 이 손 좀 놔.” 이런 모욕은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강채현은 입술을 삐죽이며 이내 울먹였다. “안 돼요! 오빠가 그랬어요, 언니가 직접...” 그렇게 점점 짜증이 밀려온 권시아가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아악!” 귀를 찢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채현의 몸이 뒤로 밀리며 뒤통수가 거실 테이블 모서리에 세게 부딪친 것이었다. 피가 흘러내려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그 소리에 놀란 윤재우가 거실로 뛰어 들어왔고 시야에는 피투성이가 된 강채현과 굳어버린 권시아가 들어왔다 순간, 그의 눈이 광기로 뒤덮였다. 이유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윤재우는 미친 듯이 달려가 강채현을 끌어안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권시아! 당신 채현이는 왜 민 거야?!” “내가 안 밀었어.” 권시아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스스로 넘어진 거야. 일부러 그렇게 한 거라고.” 그때, 그의 품 안에서 약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강채현이 힘겹게 눈을 뜨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언니 나무라지 마... 내가 잘못한 거야. 굳이 언니한테 탕을 끓여달라 해서... 오빠, 내가 여기 있으면 불편하지? 나 그냥 다른 데로 옮길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윤재우가 피로 젖은 손으로 강채현의 상처를 눌렀지만 피는 멈추지 않았고 검은 수트는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넌 내 여동생인데 누가 감히 너를 내쫓을 수 있어?”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번뜩이며 권시아에게 향했다. “그리고... 누구든 내 여동생을 함부로 괴롭히는 건 용서 못 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권시아는 사당으로 끌려가 그 안에 갇혔다. 사당 안은 빛 한 줄기 없이 캄캄했고 밖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권시아의 온몸이 굳어버렸다. 폐쇄공포증이 없는 사람은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숨이 막히고 세상이 사라지는 듯한 공포였다. 그녀는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며 절규했다. “재우 씨! 나 아니야! 내가 안 밀었어! 여보, 제발 나 좀 여기서 꺼내줘!” 그러나 돌아온 건 완벽한 정적뿐이었다. 짙은 어둠이 물처럼 밀려들어 와 그녀를 삼켰다. 권시아는 구석으로 몸을 웅크리고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파묻은 채 온몸을 떨었다. 그러다 문득 뇌리에 번개처럼 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권시아에게 페쇄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윤재우는 집 안 구석구석에 작은 불빛을 달아주었었다. “이제부터 밤마다 내가 곁에 있을게. 다시는 어둠이 무섭지 않게.” 그날, 감동을 받은 권시아는 울었다. 윤재우는 그녀의 빛이었고 그 어둠을 대신 삼켜주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본인의 손으로 직접 권시아를 어둠 속에 밀어 넣은 것도 바로 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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