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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풀려나왔을 때, 권시아는 두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온몸은 물에 빠졌다 건진 사람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 앞에 선 강채현은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시아 언니, 오빠가 말했어요. 언니가 두 번 다시 그런 짓 안 하게 하려고 벌을 준 거라고. 다음에 또 나 괴롭히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래요.” 권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감정 하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돌아섰다. 다음은 없을 것이었다. 이제 이 미친 남매와는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을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근처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권시아는 우연히 강채현이 안방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방을 살펴보니 이혼 서류와 이민 서류는 그대로 서랍 안에 있었고 다행히 손대지 않은 것 같았다. 그 방의 금고 비밀번호는 오직 그녀와 윤재우만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권시아는 집 안 여러 곳에 핀홀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 이민 준비는 서류가 워낙 많아 며칠째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증명서를 발급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유현 그룹 창립기념 만찬이 있는 날이라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고 그게 아니었으면 새벽에 돌아왔을지도 몰랐다. 드레스를 갈아입고 보석함을 열어 평소 자주 착용하던 액세서리를 꺼내려던 순간, 그녀는 몇몇 귀중한 보석이 사라진 걸 알아챘다. 바로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윤재우가 연미복 차림으로 들어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내 옥 반지는 어디 갔어?” 그 옥 반지는 윤씨 가문의 상징으로 평소에는 금고에 보관하다가 중요한 행사 때만 꺼내 착용하는 물건이었다. 권시아가 급히 금고를 열어보니 옥 반지만 없어진 게 아니었다. 그녀가 보관하던 금괴 몇 개도 사라진 것이었다. 소란이 커지자 강채현이 다가왔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연한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큼직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어 밝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윤재우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채현이 왔구나.” 그 광경을 보던 권시아는 문득 얼마 전의 그 수상쩍은 장면이 떠올랐다. “채현아, 재우 씨의 옥 반지가 없어졌어. 내 금괴랑 보석들도 같이 사라졌고. 그런데 예전에 너 몰래 우리 방에 들어간 적 있지?” 그 말에 강채현은 금세 눈가가 붉어지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시아 언니, 지금 저 의심하는 거예요?” “여보!” 윤재우의 목소리가 싸늘해졌다. “증거도 없이 채현이를 모함하지 마.” “오빠, 나 사실 언니를 위해서 참았거든? 그런데 이렇게까지 나를 억울하게 하니까... 나도 어쩔 수 없네.” 그녀의 눈물은 끊어진 진주알처럼 뚝뚝 떨어졌다. “언니가 요 며칠 계속 가방 들고 외출하길래 이상해서 몰래 따라가 봤어. 그랬더니... 오빠의 옥 반지를 훔쳐서 사당에 숨기더라고. 나는 오빠 마음 상할까 봐 말 안 했는데 이렇게까지 나를 몰아붙이다니...” 그녀는 눈물에 젖은 시선으로 윤재우를 올려다보며 애처롭게 물었다. “오빠, 나 믿지?” 권시아는 고요하게 그들을 바라보다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럴 줄 알고 내가 미리 대비해뒀지.” 그녀는 벽에 걸린 결혼사진 액자 앞으로 가더니 그 뒤에서 핀홀 카메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걸 보면 진실이 바로 드러날 거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채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윤재우의 품에 매달리며 다급히 말했다. “오빠도 설마 나 의심하는 거야? 정말이야, 내가 직접 봤어! 시아 언니가 옥 반지를 사당에 숨겼다니까?” “괜찮아, 오빠는 너 믿어.” 윤재우는 그녀를 다정히 달래며 품에 안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차갑게 권시아에게로 향했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카메라를 낚아채 바닥에 내던지더니 발로 힘껏 짓밟아 산산조각냈다. “권시아, 채현이한테는 내가 준 무제한 카드가 있어. 그 카드면 뭐든 살 수 있는데 뭐 하러 당신 보석에 눈독을 들이겠어? 그리고 누가 허락도 없이 집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래!” 그때였다. 밖에서 도우미가 뛰어 들어왔는데 손에는 윤재우의 옥 반지와 금괴가 들려 있었다. “대표님, 정말 채현 씨 말씀대로 물건들이 사당 안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윤재우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권시아의 뺨을 후려쳤다. “어쩌다 이렇게 변한 거야? 정말 실망이야!” 귀 옆에서 ‘웅’ 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귀 안이 막힌 듯 울렁거리고 한순간 멍해졌다. 너무 힘을 주어 때리는 탓에 권시아의 몸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다 장식용 꽃병에 부딪히며 균형을 잃었고 산산이 부서진 조각 위로 아무런 방어도 없이 쓰러졌다. 깨진 유리 파편이 매끄러운 등을 깊숙이 파고들었고 날카로운 고통에 그녀의 입에서는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강채현은 입가를 아주 살짝, 거의 알아채지 못할 만큼 씩 올렸다. “오빠, 그만해. 이것도 어떻게 보면 내 탓이야. 내가 괜히 오빠 곁에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차라리 내가 나가서 살게.” 말을 마치자 강채현은 울먹이며 고개를 돌리고 달려나갔다. 그러자 윤재우는 바닥에 쓰러진 권시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내가 뭐라 했어? 채현이는 그냥 내 여동생이라니까? 그런 애를 꼭 이렇게 몰아붙여야 속이 시원하겠어?” 권시아는 피 묻은 입술 끝을 비틀며 냉소를 흘렸다. ‘여동생? 침대까지 함께 쓰는 게 여동생?’ 목구멍에서 피비린내가 올라왔지만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난 일부러 모함한 적 없어. CCTV 보면 다 드러날 거야.” “아직도 잘못을 모르는구나?!” 윤재우는 이를 악물더니 그녀의 머리를 세게 밀쳤고 그 바람에 뒷통수가 탁자 모서리에 부딪히며 피가 순식간에 흘러내렸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렸다. 피범벅이 된 채 바닥에 앉은 권시아는 멀어져 가는 윤재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를 비틀어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피를 닦고 옷매무새를 고쳐 입은 뒤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만찬장으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터진 입술 자국과 등 뒤로 번진 핏자국,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연민과 비웃음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권시아는 마치 그 어떤 시선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고개를 세우고 허리를 곧게 폈다. 곧 이 집을 떠나면 모든 게 끝날 테니 말이다. 바로 그때, 만찬장 문이 벌컥 열리며 두 명의 경찰이 들이닥쳤다. “신고를 받고 왔습니다. 이곳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용의자는...” 한 경찰이 구속영장을 확인하고는 단호히 말했다. “권시아 씨입니다.” 순간, 장내가 술렁였다. 권시아는 온몸이 굳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윤재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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