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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다음 날 아침, 디자인부는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서나빈이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고, 뒤쪽에서는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눈치 빠른 서나빈은 이 소동이 자신에게 번질 거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나빈아, 어젯밤 디자인부에 도둑이 들었대.” 연이정이 귓속말로 말했다. “연말 대회용 디자인 원고가 부장실에 보관되어 있었잖아. 그걸 누가 네 자리로 옮겨 놨어.” 서나빈은 듣자마자 상황을 깨달았다. 연말 디자인부 디자이너 경연을 앞두고, 많은 동료가 확정된 디자인 원고를 남서진에게 맡겨 보관해 왔다. 만약 유실되거나 유출되면, 그동안의 노력은 수포가 되고 다시 설계해 출전해야 한다. 시간만 낭비하고, 경쟁자에게 생각할 여지까지 주는 셈이다. 서나빈은 말없이 주변을 훑었다. 서나빈의 날 선 눈빛에 사람들이 움찔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을 줄은 말이다. 왁자지껄하던 사무실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서나빈이 피식 웃었다. 아직 가방도, 태블릿도 내려놓지 않았는데, 그녀의 책상 위에 얇게 겹친 서류 뭉치가 하나 더 생겨 있었다. 서나빈은 손가락으로 책상에 눌려 있던 서류를 들어 올리듯 집어 들고, 시선을 들어 한 번 더 모두를 훑었다. “여러분 디자인 원고들이 어쩌다 제 발로 제 책상까지 걸어왔을까요.” 툭 하고 놓자 원고들은 서나빈의 자리 위에 가지런히 쌓였다. 다들 원고가 그녀의 책상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는 않았다. 전부 그녀가 오길 기다렸다가 공개적으로 시비를 걸 작정이었으니까. “서나빈 씨, 아무리 1등하고 싶어도 이렇게까지 할 건 없잖아요.” “어젯밤에 왜 야근하나 했더니, 우리 작품들 베끼려고 남아 있었죠!” “작품은 기밀이에요. 서나빈 씨는 전부 다 봤으니 공정한 경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요?” ...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서나빈은 침착했다. “정말 베끼고 싶었다면 사진 찍어 가서 천천히 보면 돼요. 굳이 원고를 제 책상에 그대로 뒀을까요? 차라리 바로 휴지통에 버려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는 편에 나았겠죠. 그리고 제가 미쳤다고 야근 중이라는 게시물을 올렸겠어요? 알리바이를 만들어야 할 판에? 누가 봐도 수상한 짓을 얼마나 멍청해야 하겠냐고요.” 말문이 막힌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도 여전히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특히 연차 높은 디자이너들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뭉개버리고 싶을 기세였다.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던 서나빈은 책상 위 원고를 죄다 집어 옆 프린터 위로 옮겨 놓았다. 원래 성격이 좋았던 서나빈은 새 회사에서 자리도 못 잡은 때 감정싸움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도무지 억울함이 끓어오르는 걸 차마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요.” 남서진이 들어왔고, 그의 뒤로 윤시헌과 심지원이 따라 들어왔다. 임원진의 급습은 처음이라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서나빈은 남서진을 한 번 보고, 그의 안경테 너머로 뒤에 선 윤시헌의 시선과 스쳤다. 하지만 오래 보지는 못하고 고개를 내렸다. “별일은 아니고요. 어젯밤 서나빈 씨가 연말 대회 원고를 꺼내 봤다고 해서 몇 마디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가 먼저 운을 뗐다. “아닙니다.” 서나빈의 어조는 단호했다. 그때 그녀는 윤시헌이 줄곧 자신을 보고 있는 걸 느꼈다. 얼음 같은 눈빛에 공포가 치밀어 올라 말끝까지 살짝 떨렸다. “모든 일에는 증거가 필요한 법이죠. 제가 어젯밤 늦게까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게 곧 제가 했다는 뜻은 아니죠. 게다가 여기 계신 분들 작품, 제 기준에서 참고할 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연말 1등을 노리는 제 작업에 영향을 줄 수준도 아니고요.” “...” 디자인부가 또 술렁였다. 서나빈을 오만하다고도, 거만하다고도, 허세라고도 했다. 윤시헌은 그 말을 듣고 시선을 살짝 내리며 미소를 흘렸다. “CCTV 보면 되죠.” 남서진이 말했다. “경비 쪽에서 어젯밤은 점검이라 카메라를 켤 수 없었다고 했어요. 나빈이가 사무실에서 일한 건 찍혔는데, 원고를 옮기는 장면은 없었대요.” 연이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일이 터지자마자 연이정은 제일 먼저 영상을 확인하러 갔다. 자기 절친의 결백을 증명해 주고 싶어서였다. 결론이 나지 않자 설전은 계속됐다. 서나빈은 말을 아끼며 왜 이 서류 뭉치가 자기 앞에 놓였는지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를 굴렸다. “서나빈.” 무리 속에서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즉시 입을 닫았다. 윤시헌이었다. “따라와.” 그는 파문 하나 없이 냉담했다. 말을 마치고 곧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윤시헌이 돌아서는 순간 수군거림이 폭발했다. 다들 서나빈이 혼날 거라고 여겼다. 서나빈은 떳떳했기에 어깨를 펴고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윤시헌의 은은한 단향이 코끝을 스쳤다. 들뜬 심장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자 심지원은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앉아서 같이 아침 먹자.” 그가 테이블 위의 딤섬 세트를 가리켰다. “네?” 서나빈은 순간 얼떨떨했다. ‘무슨 의미지?’ 말을 꺼내려는 참에 때맞춰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윤시헌은 자리에 앉아 일회용 젓가락을 뜯어 멍하니 서 있던 그녀에게 건넸다. 전개가 너무 급반전이라 이해는 안 갔지만, 음식의 유혹 앞에서 그녀는 젓가락을 받아 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서나빈은 여유 있는 조거 팬츠에 반목 반소매 티셔츠를 받쳐 입었고, 느슨한 번 헤어가 흐트러짐 없이 얹혀 있었다. 묘하게 도발적이었다. 그럴 때마다 윤시헌의 시선이 스치고는 했다. 서나빈은 천천히 먹는 편이었고, 그는 그녀의 속도에 맞춰 느긋이 동행했다. “배불러?” “네.” 서나빈은 냅킨을 뽑아 입가를 닦았다. 이번 달 추석 행사 준비로, 그녀는 아침을 제대로 챙겨 먹어 본 기억이 오래였다. “이제 가서 일 봐.” 윤시헌은 정리를 시작했다. 서나빈은 재빨리 거들었다. 그 와중에 작은 손이 그의 뜨거운 손바닥에 스치자, 그녀는 손을 거두어 등 뒤로 감췄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그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왜 이 타이밍에 부른 거지?’ 아침을 먹였으면 원고 얘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턱에서 서나빈은 멈춰서서 돌아봤다. “대표님.” “응.” 윤시헌은 손에 든 포장 용기를 휴지통에 던지고, 손을 툭 털어내며 맑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우리 일 남한테 말하지 마요.” “어떤 일요?” ‘어떤 일이냐고?’ “전부 다요.” “그래.” 윤시헌의 대답을 듣고, 그는 다시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서나빈은 숨을 돌렸다. 이 폭군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사무실 공기는 유난히 팽팽했다. “남은 만두 먹을래?” 연이정이 그릇을 밀어뒀다. “아니, 배불러.” 그녀가 앉았다. “그렇지, 화만으로도 배부르겠다!” 잠시 뒤 심지원이 들어와 남서진을 위층으로 불렀다. 웅성거림은 더 커졌고, 다들 대놓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대표님이 너를 혼내지는 않았어?” 연이정이 슬쩍 물었다. “아니.” “그럼 위에서 십몇 분 동안 뭐 했는데?” “그냥 오늘 아침 일 관련해서 몇 가지 물었어.” 서나빈은 괜히 마음이 들켜버릴까 싶어 서둘러 화제를 끊고 오늘 업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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