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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하늘의 말이 끝나자, 사무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온지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됐던 점이 있었다. ‘왜 심주원은 약으로만 청력을 억누르고 있었을까. 정말로 나를 완전히 듣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 답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녀의 귀가 완전히 망가지면 작곡 능력도 사라질까 봐 우려했던 것이다. 그녀가 만든 노래가 필요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도구로서 이용하려고 일부러 남겨둔 것이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심주원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온지아를 바라봤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온지아가 얼마나 절박하게 청력을 되찾고 싶어 했는지를. 그 바람 하나로 온몸을 깎아가며 작곡을 이어온 그녀였고 재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영영 듣지 못하게 하자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가슴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올라왔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낯설고 불쾌했다. 심주원은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새 앨범 발매되고 일정 좀 끝나면 생각해 보자.” “맞아.” 온지아 옆에 서 있던 심주혁도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를 완전히 망가뜨린 뒤에는 계속 곡을 쓰게 달래야 하니까, 우리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미리 준비해 둬야지.” “준비?” 강하늘은 입꼬리를 비틀며 코웃음을 쳤다. “준비가 뭐가 필요해? 내가 들은 말로는 오빠들 둘 중에 누구든 손가락만 까딱하면 꼬리 흔들며 달려왔다면서?” 그 말에 심주원과 심주혁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묘하게 가슴속에 걸렸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심주혁이 입을 열었다. “배고프네. 내려가서 밥 먹자.” 넷은 사무실 아래 식당으로 내려가 대형 룸을 잡았다. 식탁 위에는 진귀한 요리들이 끝도 없이 올라왔고 모든 접시는 강하늘 앞에 하나씩 채워졌다. 온지아 앞에 놓인 건 하얀 밥 한 공기와 여러 가지 밑반찬뿐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두 형제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넓은 룸 안에는 온지아와 강하늘 둘만 남았다. “온지아.” 강하늘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옆으로 와 앉았다. 눈빛에는 조롱과 오만이 섞여 있었다. “나, 기억나?” 온지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퍼즐 게임을 맞추고 있었고 시선조차 들지 않았다. 강하늘은 비웃었다. “나 조예원이 아닌 강하늘이야.” 그녀는 온지아의 옆얼굴을 탐색하듯 응시하며 소곤거렸다. “3년 전, 너를 호수에 던지고 화장실에 가둬놓고 도민정이랑 너를 차로 박살 낸 사람. 그게 바로 나야.” 그녀의 입술이 여유롭게 휘어졌다. “그땐 나를 고소하겠다고 난리였지?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강하늘은 온지아가 듣지 못한다고 믿었기에, 입가에 잔혹한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봐. 난 이렇게 돌아와서 당당히 스타가 되었어. 설령 네가 증거를 가지고 있어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그녀는 작은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말이야 그 3년 동안 형제 둘이 네가 가진 자료를 죄다 처리해 버렸거든. 완벽하게.” 온지아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퍼즐 조각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폭풍처럼 요동쳤다. 얼마 전부터 찾을 수 없었던 자료들은 그녀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두 형제가 가져간 것이였다. “정말 불쌍해.” 강하늘이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찻잔을 들었다. “네가 귀 멀고 나서 쓴 곡들 전부 히트곡 됐지. 게다가 난 그걸로 상도 받고...” 그녀는 무심히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잔혹한 기쁨이 묻어 있었다. “그 사실 알게 되면 어떨까? 또 3년 전처럼 절망하고 죽어버리고 싶어질까?”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젖히며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 형제들 있지. 진짜 멍청해.” “진짜 멍청한 형제들. 내가 조금만 눈물 섞어서 억울하다고 하면 바로 믿어버리더라? 게다가 날 위해 뭐든 다 해줬잖아. 심지어 널 망가뜨리는 데까지 앞장서.” 그 말을 끝낸 순간, 온지아가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는 투명하고 깨끗했고 표정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조예원 씨.” 순수함이 담긴 목소리로 그녀는 되물었다. “혹시 방금 저한테 뭐라고 하셨나요?” 강하늘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그제야 지금까지 들리지도 않는 귀를 향해 혼잣말처럼 쏟아냈던 자신의 말을 스스로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복수심이 움찔하며 치밀어 오른 강하늘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곧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강하늘은 망설임 없이 식탁을 거칠게 엎어버렸고 이어 온지아의 손을 낚아채 자기 목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오빠, 살려줘!” 쿵! 문이 거칠게 열렸다. 달려 들어온 심주혁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강하늘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온지아의 손이었다. “하늘아!” 그는 온지아를 잡아채듯 붙들더니 그대로 사정없이 밀쳐냈다. 갑작스러운 힘에 몸이 크게 휘청였고 버티지 못한 온지아는 결국 바닥으로 내던져지듯 쓰러지며 둔탁한 소리를 남겼다. “주혁 오빠...” 강하늘은 떨리는 목소리로 심주혁을 올려다봤다. “난 가만히 있었는데 얘가 글쎄 갑자기 질투하면서 난리를 치더니 죽이겠다고 하면서 목을 졸랐어. 흑흑.” “걱정하지 마. 괜찮아. 이제 괜찮아.” 온지아는 몸도 가누지 못한 채 간신히 기어가 심주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나 좀 병원 좀 데려다줘요... 배가 너무...” “네가 아프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심주혁이 벌레 떨구듯 그녀를 발로 걷어차자 온지아의 몸이 튕겨 나가 책상 모서리에 허리를 세게 부딪쳤다. 순간 뱃속이 뒤집히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오늘 하늘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널 가만히 안 둘 줄 알아.” 차가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텅 빈 룸 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온지아는 문득 느껴진 이물감에 고개를 숙였다. 다리 사이로 무언가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감각이 전해졌고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 흔적을 확인했다. 손끝에 묻어 있는 붉은 피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지난 기억 하나가 번쩍이며 떠올랐다. 두 달 전, 심주혁과 관계를 맺던 날 피임 도구가 찢어졌던 일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 미뤄져 온 생리까지, 그 사실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온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헉 들이켰다. 바로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심주원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그는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둘러보았고 같이 들어온 심주혁이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질투심에 미쳐서 하늘이 목 조르려고 했어.” 심주원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온지아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희미하게 몸을 떨며 그를 올려다봤다. “제발... 나 병원에...” 하지만 심주원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보지 않은 채 강하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괜찮아? 많이 놀랐어?”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세계는 갑작스럽게 조용해졌고 온지아는 더 버티지 못한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감각 하나하나가 무뎌져 가는 가운데 그녀의 의식도 서서히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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