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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위장 사망 대행 회사와 마지막 확인 전화를 마친 나는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앞으로 이틀 뒤면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코를 간지럽히는 은은한 우디향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도현은 나를 살포시 끌어안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누구랑 통화했어?” “갤러리 책임자분이 그림 때문에 물어볼 게 있다고 해서.” 나는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이도현은 나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대더니 곧바로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자기 너무 바쁜 거 아니야? 내가 저녁에 갈비찜 해줄까? 기운이 팍팍 나게!” “좋지.” 5년의 결혼생활 동안 이도현은 늘 내게 자상하고 다정한 모습만 보였다. 불교 신자들은 한번 반하면 죽을 때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길래 한때는 이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행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도현의 마음을 가져간 사람은 내가 아닌 강소원이었으니까. 이도현은 내 어깨를 끌어당기다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참, 내일 자기 본가에서 소원이 임신 축하 겸 제롬 비엔날레에 그림을 전시하게 된 축하 파티를 열기로 했대. 선물은 내가 대신 전해주고 올 테니까 자기는 집에 있어.” “제롬 비엔날레라면 나도...” 이도현은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단호하게 잘라버렸다. “이번에는 참가하지 마. 너 전부터 계속 아이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갤러리 일까지만 마무리하고 당분간은 집에서 좀 쉬어.” 나는 시선을 내리며 일렁이는 감정을 숨겼다. 결혼한 지 5년이나 됐는데도 좀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아 실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를 배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이도현이 계속 조치를 취했을 테니까. 제롬 비엔날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내가 강소원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까 봐서일 게 분명했다. 이토록 한 여자에게 맹목적인 남자가 또 있을까? “내일모레면 자기 생일이잖아. 자기가 깜짝 놀랄 만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해뒀으니까 어떤 소원을 빌지 미리 생각해둬.” 소원이라... 소원이라는 단어가 거슬리기 시작한 건 아마 이도현의 마음속 공주님이 누군지 알게 된 후부터일 것이다. 이도현은 언제부턴가 생일이 아닐 때도 늘 ‘소원’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다. 그게 강소원을 입에 담고 싶어서인 줄도 모르고 나는 늘 진심으로 그와 평생 함께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나도 자기한테 줄 서프라이즈가 있어. 그러니까 그날은 꼭 나랑 같이 있어야 해. 알겠지?” “당연하지.” 나는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 나는 허리를 감싸고 있는 이도현의 팔을 천천히 밀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때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이도현의 염주 팔찌가 이불 위에 떨어졌다. 그건 이도현이 늘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팔찌를 주운 나는 염주의 겉면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 스탠드 불빛에 비춰보았다. “하...” 염주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글자는 다름 아닌 ‘소원’, 강소원의 이름이었다. 순간 나는 마지막 남은 감정마저 모조리 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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