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정다혜는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이 손톱으로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소문이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변질될 줄 몰랐다. 게다가 그 소문 속에서 자신이 이처럼 추잡한 역할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녀가 자리를 뜨려고 몸을 돌리자 한 무리의 상류층 여성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사모님, 어디 가시려고요? 파티가 이제 시작되었는데요.”
“우리랑 함께 놀아요.”
놀자는 말은 구실일 뿐 누군가는 그녀의 드레스에 와인을 들이부었으며 누군가는 실수로 그녀를 밀쳤다. 심지어 마지막에 누군가는 그녀를 직접 수영장으로 밀어 넣었다.
풍덩!
차가운 수영장 물이 그녀를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코로 물이 들어가며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버둥거리며 손가락으로 사력을 다해 수영장 벽면을 할퀴면서 기어오르려 했다.
그녀가 수영장 끝에 가까이 닿으려던 순간 진한 빨간색 매니큐어를 칠한 손이 그녀의 머리 위를 내리눌렀다.
“살... 살려줘... 나...”
“살려 달라고? 누구도 너를 구해주지 않을 거야! 유하준 씨가 이 사교계에서 얼마나 많은 명문가 따님의 동경 대상인지 알아? 유하준 씨가 너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데, 너는 유하준 씨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렇게나 방탕한 너는 여기서 죽어도 마땅해!”
코로 물이 꽉 차오르며 질식할 것 같은 느낌에 그녀의 시야가 서서히 어두워져 갔다.
하지만 그녀를 더 질식하게 만든 것은 그들의 말이었다.
‘내가 방탕하다고? 내가 추잡하다고? 유하준이 나를 목숨처럼 사랑한다고? 웃겨! 정말 말도 안 돼!’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찢어질 듯한 고함이 들려오자 머리 위를 누르던 힘이 홀연히 사라졌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정다혜는 유하준이 미친 듯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문득 그녀는 비웃음이 나왔다.
‘왜 그렇게 당황해하는 거야? 이 모든 게 바로 네가 바라던 거 아니야?’
유하준은 물속에서 그녀를 끌어 올린 후 주위의 사람들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호통쳤다.
“너희들 정신 나갔어? 감히 내 아내에게 손을 대?”
“유 대표님, 우리는 저년이 유 대표님을 배신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을 뿐...”
“됐어.”
유하준은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냉랭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다혜 뱃속의 아이가 설령 납치범의 아이라도 해도, 나는 오직 다혜만을 사랑할 뿐이야. 이 마음은 평생 변하지 않아.”
“유 대표님은 정말 한결같은 분이시네요.”
이어지는 감탄 속에서 그는 흠뻑 젖은 정다혜를 안고 그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에 들어서자 유하준은 마른 타월을 가져와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닦아주었다.
“다혜야, 네가 서운한 걸 알아. 내가 잘못했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녀의 귀에는 텅 빈 위로처럼 들렸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조금만 더 참아 줘. 채린이가 아이만 낳으면 바로 해외로 보낼게. 그럼 우리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그러면 안 돼?”
‘안돼.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함께할 미래도 없어.’
정다혜는 지친 몸을 이끌고 일어서며 말했다.
“나 먼저 갈게.”
유하준은 잠시 멈칫했다.
“아직 파티가 안 끝났는데... 같이 가는 건 좀 그래... 먼저 기사를 불러서 너를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할게. 나는 조금 있다가 너에게 갈게. 그럼 안돼?”
‘함께 떠나는 게 불편해서일까? 아니면 민채린을 여기에 혼자 두는 게 불안한 걸까?’
그녀는 살짝 웃음을 흘리며 더는 폭로할 기력도 없어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떠났다.
별장에 돌아온 정다혜는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집에 남긴 자신의 흔적을 하나하나 모두 지워냈다.
한참을 정리한 후 마지막 박스를 닫는 순간 현관문이 갑자기 열렸다.
문 앞에 서서 바닥에 가득 널브러진 짐들을 본 유하준은 깜짝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혜야, 왜 갑자기 짐을 싸는 거야? 어디 가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