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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상처 처치를 마치고 떠나려던 정다혜는 수술실 앞에서 우연히 유하준과 마주쳤다. 간호사가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유하준 씨, 환자분이 과다 출혈로 수혈이 필요해요. 혈액형이 RH 음성인데, 이건 희귀 혈액형이에요. 헌혈할 수 있는 가족분이 계시는가요?” 얼굴빛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질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하준의 시선이 마침내 정다혜에게 고정되었다. 그는 눈빛이 반짝이더니 재빨리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다혜야, 네 혈액형이 RH 음성이지? 채린이가 나를 구하려다 다쳤어. 제발 좀 채린이를 구해 줘.” 정다혜는 온몸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그는 분명히 그녀가 빈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작년에 빈혈로 쓰러진 그녀를 위해 그는 안절부절못해서 병원을 발칵 뒤집을 뻔했다. ‘그러나 지금 빈혈이 있는 나에게 다른 여자를 구하라 하다니...’ “조금만 뽑으면 돼.” 유하준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며 손아귀의 힘은 더 거세졌다. “채린이는 기다릴 시간이 없어!” 정다혜의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그는 강압적으로 그녀를 헌혈센터로 밀어 넣었다. 바늘이 혈관을 찌르는 순간 정다혜는 눈을 감았다. 600cc의 피가 빠르게 빠져나가자 그녀의 얼굴빛은 점점 창백해졌다. 유하준은 곁에 서서 초조한 눈빛으로 수술실 방향만 바라보고 있을 뿐 그녀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피를 뽑은 후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다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하준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미안해, 다혜야... 네가 아이를 걱정하는 거 알아. 하지만 안심해, 병원에서 헌혈량을 정확히 조절할 거야. 그래도 불안하면 지금 바로 의사에게 검사해달라고 할게.” 그는 강제로 그녀를 검사실로 데려갔다. 이내 의사가 검사 결과지를 들고나왔다. 유하준이 급히 의사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아이는 괜찮나요?” 의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이요? 아이가 없는데...” “유하준 씨!” 간호사가 갑자기 뛰어나오며 말을 끊었다. “민채린 씨께서 수술 내내 유하준 씨의 이름을 부르고 계셔요. 생존 의지를 높이기 위해 잠시 수술실로 들어와 주실 수 있을까요?” 유하준은 주저 없이 재빨리 수술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의사는 정다혜를 바라보며 말을 삼켰다. “사모님, 유 대표님께서는 아이를 지우신 걸 모르시는 건가요?”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세요. 이제부터는 알 필요도 없어요.” 병원을 나서니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하늘가의 노을을 바라보던 정다혜는 문득 대학 시절 유하준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양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떠올랐다. 지금도 석양은 여전히 아름답게 물들어가고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정다혜는 집에서 꼬박 일주일 동안 몸을 추슬렀다. 그녀는 헌혈 후유증으로 기력이 저하되어 빈번한 현기증에 시달렸으며 기초적인 활동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가정부들은 안타까워서 유하준에게 전화하려 했지만 그녀가 막았다. “괜찮아요.” 그녀는 힘없이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서 말했다. “아마 바쁠 거예요.” 그가 무엇 때문에 바쁜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민채린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민채린은 매일 같이 SNS에 유하준이 자신에 대한 애틋한 배려 행각 사진을 올렸다. 그는 직접 그녀에게 국물을 떠먹여 주었으며 산전 검사에도 따라다녔을 뿐만 아니라 한밤중에 차를 몰고 그녀가 먹고 싶다던 매실을 사러 나갔다. 그런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누가 그의 아내인지조차 잊힐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하준이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친구가 아이 돌잔치를 한대.” 그는 드레스룸 앞에서 넥타이를 고르며 말했다. “다혜야, 우리 함께 가자.” 정다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그를 따라 문을 나섰다. 그러나 조수석 문을 연 그녀는 민채린이 이미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다혜 언니.” 민채린은 살짝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병원이 너무 답답해서 하준 오빠한테 나도 데려가달라고 부탁했어요. 제가 차멀미를 해서 앞자리에 앉았는데... 괜찮으시죠?” 정다혜의 손가락이 허공에 굳어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그녀는 손을 거두며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녀는 조용히 뒷자리에 앉아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친밀한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유하준은 다정하게 민채린을 위해 에어컨 온도를 낮춰주고 쿠션을 건네주었다. 한때 오로지 그녀 것이었던 이 온정들은 이제 모두 다른 이에게 향하고 있었다. 파티장에서 유하준은 행사 내내 민채린만 돌보느라 주위 사람들이 정다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귓가로 그들의 속삭임 소리가 들려왔다. “유 대표님이 정말 불쌍하네요. 아내를 그렇게 사랑하셨는데, 결국 아내가 납치범의 아이를 가졌다니...” “성폭행당한 거 아니었어요?” “성폭행은 무슨? 민채린 씨도 함께 납치당했는데 왜 괜찮은 거예요?” “전부터 행실이 의심스러웠어요. 살려달라고 납치범을 유혹했겠죠. 그것 때문에 유 대표님이 괴로워서 술에 취해 민채린 씨와 잠자리를 한 거잖아요. 그래서 민채린 씨가 임신까지 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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