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몰려들자 사람들은 이것저것 집어 들어 정다혜에게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정다혜는 피할 새도 없이 운전기사와 함께 서둘러 민태호와 노정서를 부축해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그들이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민채린이 달려와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면서, 뒤에서는 우리 부모님을 해치려 했던 거야?”
민채린은 눈물을 흘리며 소리쳤다.
“정다혜, 어떻게 이렇게 악독할 수가 있어!”
정다혜가 입을 열려는 순간 눈앞에 익숙한 그림자가 스쳤다.
유하준이 재빨리 걸어와 비틀거리는 민채린을 부축하며 말했다.
“채린아, 진정해. 화내면 아기에게 안 좋아.”
그는 민채린을 부축한 후 고개를 들어 정다혜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깊은 주름을 짜낸 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실망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온몸이 꽁꽁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초라한 내 모습은 보이지 않는 걸까? 너마저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거야?’
“다혜야, 나 정말 너한테...”
실망했다고 말하기도 전에 정다혜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웃다가 눈물이 입가의 상처를 타고 흘러들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의 설명을 한마디도 듣지 않은 채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래! 내가 추잡해! 내가 방탕해! 내가 사악해! 내가 천벌을 받아도 마땅할 년이야, 죽어야 할 년이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외친 그녀의 절규는 복도를 맴돌았다.
“이제 됐어?”
유하준은 순간 멈칫하더니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다혜야, 나는...”
“하준 오빠!”
민채린이 갑자기 힘없이 그의 품 안으로 쓰러졌다.
“나... 나 어지러워...”
유하준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붙잡았다.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정다혜의 단호한 뒷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얀 트렌치코트의 자락이 공중에서 한 줄기의 고독한 곡선을 그렸다. 마치 날개가 부러진 나비처럼 말이다.
심장이 툭 내려앉는 듯한 공허함이 유하준의 가슴을 스쳤다. 그가 그녀를 쫓아가려던 순간 품 안에 민채린이 또다시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가지 마!”
민채린이 허약하게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아기... 우리 아기...”
정다혜는 뒤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느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비로소 무너져 내린 그녀는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마음이 죽어버리니 울음조차 소리가 없는 법이었다.
집에 돌아온 정다혜는 이불 속에 자신을 묻어버렸다.
그날 밤 그녀는 아주 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는 온통 유하준이 예전에 그녀를 사랑할 때 모습으로 가득했다.
대학교 벚나무 아래에서 유하준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이번 생에는 너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던 모습, 결혼식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반지를 끼워주고는 눈시울이 붉어졌던 그의 모습,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듣고 거실에서 그녀를 안고 세 바퀴나 돌며 기뻐하던 그의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그 장면들이 그가 민채린을 보호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흑기사를 자처했으며 그녀를 위해 약을 사주었다. 심지어 모든 사람 앞에서 민채린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선언했다.
쾅!
굉음에 정다혜는 잠에서 깼다.
눈을 뜨니 창밖은 이미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와 민채린의 애교 섞인 지시가 들려왔다.
“이 소파는 선룸으로 옮겨요. 낮잠 자면서 햇볕 쬘 거예요.”
“이 화초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얼른 치워 버려요. 이 커튼 색상도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바꿔요.”
지친 몸을 이끌고 방문을 나선 정다혜는 마침 민채린의 베개를 끌어안고 계단을 올라오는 유하준과 마주쳤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의 몸이 확연히 굳어버렸다.
“채린이의 부모님이 너 때문에 다쳐서 입원하셨어.”
그는 딱딱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분들이 채린이가 혼자 사는 걸 걱정하셔서, 내가 출산할 때까지 채린이를 여기에 들어와 살라고 했어.”
정다혜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유하준에게 눈길 한번 주지도 않았다. 시선은 그를 뚫고 지나 마치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허망하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이런 느낌인 거구나. 무감각해지고, 공허해지며, 분노할 힘도 없어지는 거였어.’
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는 순간 유하준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다혜야...”
목소리에는 익숙한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마치 예전에 싸울 때마다 그가 사과하려다가 체면 때문에 망설이던 그때의 어조와 같았다.
“하준 오빠!”
때마침 민채린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기가 또 차는 것 같아. 빨리 와서 만져 봐.”
유하준이 앞으로 나서려던 발걸음이 멈추었다.
정다혜는 그가 가볍게 내쉬는 한숨 소리와 점점 멀어져 가는 발소리를 들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진다고, 지금은 민채린의 말대로 해주자는 거잖아.’
마치 매번 그가 항상 그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조금만 더 참아, 금방 괜찮아질 거야, 이 일만 지나면”
하지만 이번에 정다혜는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