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그날 이후로 정다혜는 투명 인간처럼 자신의 집에서 살면서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유하준은 매일 새로운 방법으로 민채린을 달랬으며 직접 그녀에게 산모 영양제를 챙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회사 회의까지 미뤘다.
이날 민채린은 유하준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거만하게 정다혜를 막아서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네가 하준 오빠와 결혼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 오빠가 나에게 약속했어. 이 아이는 하준 오빠의 성씨를 따를 뿐만 아니라 유진그룹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거라고 말이야! 네 뱃속의 아이는 그냥 잡것일 뿐이야!”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던 정다혜는 그 말을 듣고도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지나가려 했다.
그녀의 이 태도에 민채린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정다혜! 이렇게 초라한 신세가 되었는데도 아직 도도한 척하는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갑자기 달려들어 정다혜를 밀었다.
정다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전신이 휘청거리며 뒤로 쓰러졌다.
천지가 빙빙 도는 아찔한 순간에 그녀는 자신의 후두부가 계단 난간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를 들은 뒤 이내 세상이 캄캄한 어둠으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또다시 병원에 누워 있었다.
병상 앞에 선 유하준의 첫마디는 호된 추궁이었다.
“채린이 부모님을 다치게 한 건 그렇다 쳐도, 왜 채린이를 계단에서 밀었어? 채린이가 임신 중인 걸 모르는 거야?”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칼날처럼 그녀의 심장을 후벼팠다.
정다혜는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며 웃음을 터뜨렸다.
“유하준.”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바보로 보여?”
“뭔 소리야?”
“내가 정말 민채린을 해치려 했다면.”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왜 지금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이 나지?”
“그건 네가 채린이를 밀고 난 뒤 두려워서 스스로 계단에서 굴러 내려와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거잖아!”
유하준의 눈빛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다혜야, 나는 점점 너를 이해할 수가 없어. 너는 이미 채린이가 집에 들어와 사는 것도 허락했으면서, 왜 이렇게 비열한 술수를 쓰는 거야?”
그는 돌아서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다시는 너 보러 오지 않을 거야. 너 스스로 잘 반성해.”
말을 마친 그는 병원 문을 쾅 하고 세게 닫으며 떠났다.
정다혜는 천천히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스스로 끊임없이 되뇔 수밖에 없었다.
‘다 됐어, 곧 끝날 거야.’
퇴원일이 마침 이혼 숙려기간이 끝나는 날이었다.
정다혜는 바로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의사확인서를 받아 쥐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짐을 싸서 완전히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던 그때 유하준이 갑자기 돌아왔다.
“뭐 하는 거야?”
그는 그녀가 든 캐리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퇴원하자마자 기부하러 가는 거야?”
그는 그녀가 예전에 그에게서 받았던 명품들을 기부하러 간다고 생각했다.
정다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유하준은 몇 걸음 그녀에게 다가와 주머니에서 금박이 찍힌 초대장 한 장을 꺼냈다.
“채린이가 너그러워서 예전에 일을 따지지 않기로 했어. 오늘 채린이 생일이야. 정성껏 선물 하나 준비해, 나랑 함께 채린이의 생일 파티에 가자.”
정다혜가 막 거절하려는 순간 유하준의 핸드폰이 울렸다.
민채린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준 오빠, 어디야? 왜 아직 안 와? 다들 오빠만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갈게.”
유하준은 부드럽게 대답한 뒤 정다혜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시간이 늦었으니 나 먼저 갈게. 너는 기부할 것이 있다면 그거 끝내고 와. 단 선물은 꼭 챙겨야 해.”
말을 마친 후 그는 몸을 돌려 떠났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다혜는 문득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특별한 선물을 준비할게, 모두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 선물을 말이야.’
그녀는 이혼의사확인서와 유산 진단서를 선물 상자에 넣은 후 퀵 서비스 배달 기사를 불렀다.
“이 주소로 배달해 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꼭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열어달라고 해주세요.”
빠른 배달 기사가 떠난 후 정다혜는 캐리어를 끌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한때 평생 살 집이라고 생각했던 별장을 떠났다.
문밖에는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쉰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